[글로벌 포커스-강효백] 관료와 기업인의 나라 중국

입력 2010-03-22 18:10


중국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5일 중국 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이자 한국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회식 연설에서 65번이나 ‘개혁’을 언급했다. 예년과 달리 원 총리는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개혁과 현대화 건설은 성공할 수 없다”며 유독 정치 분야의 개혁을 강조했다.

지난 30여년간 중국에서 개혁은 일종의 신화였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개혁을 말했고 개혁에 취해 살아 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개혁 피로감이나 개혁 환멸 증세를 호소하는 중국인이 부쩍 늘고 있다. 1970년대 말 동남연해지역을 우선 발전시키자는 선부론(先富論)을 시작으로 1980년대의 경제건설 중심론, 1990년대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2000년대의 ‘시장경제는 중국의 기본 경제제도’까지 단계를 높여 온 경제개혁 일변도의 목표는 다름 아닌 ‘부자 되기’였다. 그 덕분에 중국은 매년 평균 9.8%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이 넘는 달러를 쌓아두게 되었다.

빈부격차 심화 등 후유증 커

하지만 휘황한 개혁의 성과 이면에는 빈부격차 심화, 배금주의와 족벌자본주의 만연, 부정부패 창궐, 가치체계의 총체적 붕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실업자와 유랑민 등 소외계층의 불만 폭발 가능성에 마주하고 있는 지배층은 더 이상 정치개혁을 지체해서는 안 될 한계 상황에 직면한 현실에 눈 뜨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14일 폐막된 전인대의 최대 성과는 의외로 ‘선거법 개정’이었다. 당초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경제발전 모델 전환, 급등한 주택 가격과 소득격차 등 민생 문제에 대한 정책 변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에 개정된 선거법의 핵심 조항은 둘. 농촌과 도시의 전인대 대표 선출권 비율을 과거 4대 1에서 1대 1로 일치시킨 것과 전인대 대표의 일정 수 이상을 농민과 노동자에 할당해 선출토록 한 것이다. 도농 간 차별을 철폐하고 농민과 노동자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확대 부여함으로써 소외계층의 정치참여 욕구를 해소하며 도시화에 따른 달라진 현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정치개혁의 일환이라고 분석된다.

“그 많던 노동자와 농민은 어디로 갔을까.” 필자가 선거법과 관련한 중국 정치 제도와 동향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문이다. 1954년 제1기 전인대 대표의 대부분은 노동자와 농민들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역대 전인대 대표를 맡는 노동자와 농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갔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엘리트 관료와 기업가들이 앉았다. 현재 제11기 전인대 대표 재적인원 2909명의 직업별 구성비를 살펴보면 당정관료 53%, 기업인 29%, 군인 9%, 교육·과학기술·예체능계 및 기타 전문가 집단 8%인데 비해 노동자 농민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인대와 함께 양회(兩會)라고 일컫는 국정 최고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 재적인원 2237명의 직업별 구성비도 전인대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전현직 관료 52%, 기업인 26%, 노동자 농민 1%).

정치개혁이 최우선 과제

중국을 견인하는 두 주역이 노동자와 농민에서 관료와 기업인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국체를 명기한 헌법 제1조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노동자 농민 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다”라는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단순히 헌법학적 견지에서 해석할 경우 중국의 통치권력 주체가 노동자와 농민 연맹에서 관료와 기업인 연맹으로 대체된 실정은 영락없는 위헌적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다른 각도로 뒤집어 보면 중국이 관료와 기업인이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헌법을 곧이곧대로 준수해 노동자 농민 연맹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 실현을 실제로 추구했더라면 오늘의 부강한 중국은커녕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일 것이다.

강효백 경희대 교수 (국제법무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