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의 ‘한국室’ 설치에 주목하며
입력 2010-03-22 18:07
일본 정부가 경제산업성에 ‘한국실’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연구기관도 아닌 정부 중앙부처에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 조직을 마련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이 우리 경제와 산업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큰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다.
격세지감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은 개발연대 이후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기술 수준과 산업 역량을 늘 부러워했다. 그 일본이 이제는 거꾸로 한국 경제의 성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부심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실은 우선 2004년 11월 이후 논의가 중단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차원의 준비기구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농산물을 포함한 FTA를 마다하고 그보다 낮은 단계의 투자·무역 자유화를 뜻하는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주장해온 일본이 한·일 시장 개방에 적극 대처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뿐 아니라 한국실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심층적으로 분석, 벤치마킹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유도하기 위한 조사연구 기능도 수행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의 선전, 아랍에미리트(UAE)와 베트남 원전설비 한국 수주 등은 일본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날로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체제 하에서 한·일 양국이 서로를 배우고 협력을 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지 않으리라 믿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의 최근 동향에 대한 과대 해석은 금물이다.
지난 3년 동안 한국의 대일 적자 규모는 연평균 300억 달러다. 수출경쟁력의 근간인 부품·소재는 대부분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일본 제조기술에 대한 벤치마킹 노력이 더욱 집요하게 추진돼야 할 이유다.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도 FTA만 주장할 게 아니라 일본의 EPA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수용하면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칭찬에 자만하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갈 길은 아직 한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