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관해 기독교계가 취해야 할 입장은… 보-혁 떠나 성경 입각한 ‘한목소리’ 필요
입력 2010-03-21 19:35
교회가 정부의 사형제 집행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형제가 인간의 생명과 죽음, 법과 양심, 죄와 벌 등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사형제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존치론자와 폐지론자가 같은 성경구절을 놓고 정반대의 논리를 펼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사형제는 ‘전쟁’이라는 주제와 함께 크리스천의 양심을 괴롭혀 왔다.
◇성경에 나타난 사형제=구약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기 위해 살인자에 대해 사형을 인준하고 있다(민 35:31). 이것은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예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사형에 대한 관점은 달라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의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에 대해 예수님은 “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편까지 돌려대라”는 급진적인 윤리를 제시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형이 마땅한 죄인까지도 회개시키는 것이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는 말씀처럼 회개와 구원의 은혜가 사형제도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법의 반역죄와 모세법의 신성모독죄 혐의를 받고 십자가라는 사형제도를 통해 죽으셨다.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터무니없는 사형제도 오남용 사례로 남게 됐다.
◇사형제에 대한 한국교회 입장=사형제도에 대해 한국교회가 하나 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폐지론이 우세한 편이다. 사형제 폐지 운동은 1987년 문장식 목사에 의해 주도됐으며, 90년 제7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총회에서 제도 폐지를 결의하면서 본격화됐다. 예장 통합은 92년 4월 1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정책협의회를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세미나와 기도회를 개최한다. 같은 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인권위원회 산하 사형폐지분과위원회를 창립했다.
2001년 4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NCCK는 사형폐지 한국기독교연합회를 발족한 바 있다. 예수님도 거부한 사형 집행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앞장서 촉구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보수화된 한기총은 사형제 유지 입장으로 선회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청송교도소 사형시설 설치 의견에 맞서기 위해 진보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형수가 사형을 집행하다?=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말했다(롬 1:32).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형제도는 사형수가 또 다른 사형수의 집행 주체가 되는 꼴이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르고 잡혀온 간음한 여인(요 8:3)을 끌어 세웠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외치는 언론과 대중을 향해 크리스천은 어떤 목소리를 내놔야 할까.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