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피플] 통합LG텔레콤 CEO 이상철 부회장

입력 2010-03-21 23:33


“스마트폰 전쟁 이제 시작 5월 국내 첫 ‘한국형’ 출시”

권토중래(捲土重來). 통합LG텔레콤이 오는 6월 새롭게 태어난다. 회사 이름을 바꾸고 파격적인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같은 변신을 설계하고 이끄는 리더는 이상철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6일 LG 통신 3사(텔레콤, 데이콤, 파워콤)를 합친 통합LG텔레콤 출범과 함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날 법도 한데 그는 느긋했다. “나는 3년 정도를 봐요. 지금 조급해서 무리하면 갖고 있던 잠재력마저 소진됩니다.”

경쟁사들이 불꽃 튀는 TV 광고 전쟁을 벌이는데도 이 부회장은 “내용 없이 광고해봐야 실효성 없는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며 광고를 일절 내지 않고 있다. 충분히 준비한 뒤 나설 생각이다. 그는 “스마트폰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5월쯤 국내 처음으로 ‘한국형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폭증하는 모바일 인터넷 트래픽과 이에 따른 요금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주자도 통합LG텔레콤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 부회장은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거물이다. 미국 듀크대 공학박사 출신으로 한국통신프리텔과 한국통신(현 KT) 사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 광운대 총장을 지냈다. 10년 만에 산업계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IT 강국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한가운데쯤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위상이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게 매우 안타까워서”라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 IT 강국을 되찾는 데 일조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최근 모바일 인터넷 혁명에 뒤처진 원인에 대해 이 부회장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너무 만족하면서 무의미한 숫자 싸움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통신 3사가 매년 8조원 이상을 마케팅비로 써왔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래왔는지 모르겠다. 그것의 반만이라도 기술 개발에 썼다면 국가산업이 발전하고 애플을 뛰어넘는 기업도 나왔을 것이다.”

관·학·재계를 두루 거친 사람으로서 3개 분야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낄까. 이 부회장은 “기업은 비전, 정부는 원칙, 학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은 비전이 확실해야 성장하고, 정부는 원칙이 있어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광운대 총장 시절(2005~2009년) ‘동북아시아 시대’ 도래와 각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 상황에 집중했다.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로 동북아대학을 만들었으며 법대엔 전문성 확보를 위해 과학기술법무학과와 건설법무학과를 신설했다.

이 부회장은 아마 6단의 바둑 고수다. 친구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정도만이 그보다 상수(上手)일 뿐 재계에서 최고수급이다. 특히 화끈한 싸움 바둑 스타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적은 내부(국내 통신업계)가 아니라 외부(애플, 구글 등 외국 업계)에 있기 때문에 통신 3사가 싸우기보다 서로 힘을 합칠 때라는 뜻이다. 그는 “KT는 이석채 회장이 와서 엄청난 잠재력이 상당 부분 살아나고 있고, SK텔레콤 정만원 사장도 소모적인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능력이 충분하다”며 “기존 통신의 틀을 깨는 탈(脫)통신으로 향한다면 우리 ICT 산업이 다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바둑관은 경영관과 상통한다. “바둑은 세밀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 대세(大勢)도 봐야 한다. 경영에서도 작은 것을 우습게 봤다간 큰일 나지만 그렇다고 지엽적인 것에만 신경 써서는 안 된다.” 그는 20세기 기성(碁聖) 우칭위안(吳淸源)의 “바둑은 조화다”라는 말도 인용했다. “내가 집을 크게 지으면 울타리가 쳐져 상대방의 집도 커진다. 조화 속에서 조금씩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게 바둑이다. 기업도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한탕주의에 나선 기업 치고 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부회장은 “나 혼자만 잘되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지 않으면서도 시장가치가 높은, 우아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