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본성에 대한 성찰 늘 진지하던 그녀가 4월, 통쾌한 웃음 들고 돌아온다
입력 2010-03-21 17:40
연극 ‘대학살의 신’ 연출 한태숙씨
국내 대표적인 여성 연출가 한태숙 연출(극단 물리 대표)이 연극 ‘대학살의 신’을 연출한다. ‘레이디 멕베스’ ‘도살장의 시간’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해석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그는 진지하고 무거운 작품 위주의 연출을 해왔다. 제목만으론 이번에도 그런 기류를 이어가는 가 싶었다. 하지만 ‘대학살의 신’은 코미디다. 한태숙 연출에게 코미디는 ‘네바다로 간다’ 이후 두번 째다. 그만큼 낯선 장르다. 배우들은 한대숙과 ‘대학살의 신’이라는 두 단어를 접하고 “또 누구를 얼마나 죽이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최근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한태숙의 표정은 밝았다. “코미디를 하다보니 많이 웃어서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연출을 고사했다. 잘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본은 재미있었지만 그건 그 자신이 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작품을 하려는데 ‘대학살의 신’에 미련이 남았다. 결국 작품이 재미 있어 용기를 내 할 마음을 먹었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인 ‘대학살의 신’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소통 부재를 꼬집는다. 지난해 토니상 연극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쓴 화제작이자 지금도 버나드 B 제이콥스 극장에서 공연 중인 최신작이다.
11살짜리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고 아이의 부모인 두 부부가 만나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변호사, 자산관리사, 성공한 도매상, 작가 등인 이들은 점잖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유치해지고 몸싸움도 불사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한태숙은 “중산층의 허세나 의식을 까발리고 찢어버리면서 그들이 망가지는 걸 보는 통쾌감이 있다”면서 “우아하고 고상하게 등장하는 인간이 서서히 파괴되면서 맨몸이 드러날 때 느끼는 시원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항상 원작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가미했던 그는 “작가의 해석에 동의한다. 이번에는 작가의 재능에 업혀가고 싶다”고 했다. 대신 대사나 배우의 행동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하려고 연구 중이다.
번역은 임수현이, 윤색은 대학로 이야기꾼인 연출가 겸 작가 고선웅이 맡았다. “미국에 가서 이 작품을 봤는데 대사의 독특한 리듬감이 있어요. 무대 전환도 없이 말로만 관객을 사로잡아요. 보편성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말을 다듬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슬랩스틱을 좋아해서 그런 요소도 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코미디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 본다”고 말하는 그가 개그 코드를 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경험이 없다보니 어디까지 가야할 지를 잘 모르겠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한계도 찾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함께 하는 배우들(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이 베테랑이라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잘하는 배우들이라 자꾸 욕심을 내요. 지금은 이걸 조절하는 게 필요해요. 제 역할이기도 하고요.”
‘대학살의 신’은 4월 6일부터 5월 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02-577-1987).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