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기념 시집 ‘시삼백’ 3권 낸 김지하 시인 “촛불시위, 그들을 생각하며 썼지요”

입력 2010-03-19 18:34

김지하 시인이 고희 기념 시집 ‘시삼백’(전 3권·자음과모음)을 냈다. 시집 제목은 ‘시경’(詩經)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은 이전에 전하던 시에서 간추려 공자가 311수로 정리한 것이지만 그 중 6수는 제목만 남아 실제 오늘날 전하는 작품은 305수다.

19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연 김 시인은 “공자는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시 외에도 노래와 이야기, 교훈적인 시를 섞어 백화제방(百花齊放)을 시경으로 들려 올렸다”며 “다양하고 복잡한 천태만상을 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시집엔 지난해 5월 펴낸 시집 ‘못난 시들’ 이후에 터져 나온 시 305편이 묶였다. 이 가운데 200여 편은 이야기(賦), 노래(興), 교훈적인 것(比), 풍자(諷), 초월적인 명상(神) 등 5개 양식으로 나눴다. 따로 구분하기 힘든 나머지 100여 편은 시인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별명인 ‘땡’, ‘구린내 나는 상상력의 영역’이라는 의미에서 ‘똥’, 세상이 마음에 안 들거나 사는 데 영 재미가 없는 차원을 지적했다는 ‘뚱’으로 이름 붙였다.

이날 고희를 맞은 김 시인은 “마음이 답답해서 쓴 시들”이라며 “나는 시인이니 호소할 곳이 시밖에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촛불시위를 비롯해 사회정치적 사안에 의견을 피력해온 그는 “‘촛불’은 그저 보통의 사건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지식인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점에서 촛불은 ‘화백(和白)적 민주주의’였지요. 촛불은 또 켜질 것입니다. 현대에 적합한 정치체계는 노자의 무위(無爲)정치입니다. 촛불처럼 민중이 스스로 정치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죠.”

김 시인은 “현재 한국은 좌도, 우도, 중간도 어떤 권력도 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있고 합리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기에 촛불 시위 현장에 모였던 몇 만 명의 생각과 생활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여러 시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공자는 69세에 당시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시경으로 정리해 70세에 펴냈지요. 당시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넘어갈 때였는데, 나도 지난해 일산에서 원주로 거처를 옮겨갔지요.”

김 시인은 ‘시삼백’의 내용을 간추려 달라는 주문에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 등으로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며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당연히 천태만상이고 아주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