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한우] 중국서 찾아보는 한국 녹색성장 패러다임

입력 2010-03-19 18:38


산둥(山東)성의 작은 도시 더저우(德州)를 찾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로, 이 도시를 자주 찾는 이유는 결코 풍광이 아름답다거나 먹을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 뼈가 무르도록 익혀 먹는 닭고기 파지, 노상 당구장 정도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 곳이다. 허베이(河北)성과 산둥성이 맞닿는 지점에 있어서 행정구역도 여러 번 바뀐, 별 볼일 없던 이곳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도시에 있는 태양열 온수기 제조회사의 황밍 사장은 2002년 한국 대구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 솔라시티 대회에 참가한 이후 시 정부를 설득해 2010년 대회를 유치하게 됐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기도 했던 그는 2003년에 다른 대표 56명과 공동으로 ‘재생에너지법안’을 발의했고, 그 법안은 2년 후에 비준을 받았다. 1986년까지 국영석유회사의 평범한 연구원이었던 자신이 태양에너지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딸이 태어나고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내 딸이 사용할 석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환경오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배출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태양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87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저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주변의 도움이란 단순한 인간적 배려나 지원이 아니었다. 중앙정부는 법을 만들고, 기술 개발과 개선에 투자했다. 지방정부는 기업경영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기업과 함께 역량을 모아 지역사회에 큰 파급효과를 몰고 올 국제행사를 유치했다.

언론은 기업이 자체 노력만으로는 태양에너지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고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객의 도움이 가장 컸다. 누구도 태양에너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던 그때, 고객들은 황밍을 믿고, 신상품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돈을 들여 제품을 구매해 줬다.

이 회사 박물관에는 30년 전 삼성이 만든 태양열 온수기가 전시되어 있다. 황 사장은 “이 제품은 30년 전 기술로 만든 것인데도 훌륭하다. 삼성이 왜 그 후 태양에너지 사업을 계속 해나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거의 같은 시기인 80년대 한국에서는 ‘불량제품, 허위 과장광고, 부실한 사후관리로 태양열온수기는 쓸 게 못 된다’는 사회적 확신이 다져지고 있었다. 같은 기간 황밍은 기술과 재료의 혁신을 거듭하여, 2008년 세계 태양열 온수기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업계의 선두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들을 통해 보급되는 태양열 집열기는 200여만㎡에 달하는데, 이는 유럽의 총량과 비슷하고 북미 총량의 2배를 넘는 규모이다.

한국은 이제 이 분야에서는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기업도 중국에서는 가장 작은 축에나 낄까? 그들은 자그마한 국내 시장을 놓고 치열한 내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뿐 해외진출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세계시장은 설치도 간단하고 형광등 갈아끼우듯 고장 난 집열관만 간단히 교체하는 진공관형이 대세인데, 한국은 평판형이 대세다. 평판형의 효율이 딱히 높지도 않다. 진공관형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생각하겠지만 유리관을 중국에서 사다 써야 하는데 중국산과 가격경쟁에서 뒤질 게 뻔하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중국산은 저질 불량이라고? 그런 것만 수입해서 파는 업자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이한우 에너지관리공단 중국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