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입장 충분히 전달됐다” 여론추이 살피며 확전 자제
입력 2010-03-19 18:12
‘삼권분립 훼손’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잃은 처사’ 등 평소 사용하지 않던 단어를 총동원해 한나라당 사법개혁안에 불만을 표출했던 대법원은 19일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대법원의 입장을 성명을 통해 분명하게 밝힌 만큼 더 이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9일 출근길에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고 “기자들이 고생한다”라는 의례적인 말만 남겼다.
대법원 고위관계자도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성명을 통해 법원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판사는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한나라당이 대법원을 비판했다고 재반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대법원의 반발에 유감을 표명한다”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지만 대법원은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일선 판사들도 대법원 입장발표를 지지하면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법부에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 판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법원 내부전산망에도 관련 글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한나라당이 마련한 개혁안에 우려를 표시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판사 3명 외에 법무장관, 대한변협회장, 전국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장이 추천하는 2명씩 모두 9명으로 법관인사위원회를 구성토록 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개혁안이 수정 없이 확정되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대폭 축소되고 판사의 보직발령 및 연임이 외부인사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결국 사법부에서 정치권 눈치 보기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외부인사가 주축이 돼 법관 인사를 하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최근 일련의 문제는 헌법적 위기상황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행정처장의 성명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상인 사법부를 제외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한나라당이 검찰에서 요구하는 영장항고제를 받아들이고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드는 것은 행정부가 형량도 정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판사들은 오는 26일 대법원장 직속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내놓을 건의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정치권이나 여론에서 법원에 요구하는 방안들이 자문위에서도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며 “법원은 변화가 느린 만큼 성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사법정책자문위는 상고심 기능개선, 항소심의 장기적 통합, 1심 재판 강화를 위한 1·2심 판사의 인사 분리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