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방지일 원로목사 보좌하는 김승욱 원로목사

입력 2010-03-19 17:47


“가려져 섭섭하냐구요? 오히려 목사님 덕에 제가 뜨는 겁니다”

올해 100세인 방지일(영등포교회 원로) 목사는 목회 햇수만 70년을 훌쩍 넘긴 한국 교회의 거목이다. 나이와 비슷한 분량(103권)의 책을 썼고, 한국 교회 파송 최초의 중국 선교사로 21년간 사역한 뒤엔 노회장, 총회장, 언론사와 연합기관 이사장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 등 손으로 꼽기 버거울 정도로 수상 경력도 많다. 지금도 선교회 회장 등을 맡아 사역 일선에서 뛰고 있다.

김승욱(72) 목사는 이 거목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사람이다. 다리가 불편한 방 목사를 부축해 모임이나 행사 장소로 안전하게 모시는 게 그의 역할이다. 고정적으로 잡힌 한 주 4일(월, 수, 목, 일)의 스케줄에다가 각종 초청 등 방 목사의 일정을 쫓아가다 보면 김 목사의 시간은 거의 없다. 이 같은 생활은 4년 전 영등포교회를 은퇴한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은퇴 전엔 서시전(64) 사모가 대신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저나 아내나 목사님을 향한 마음은 존경심 그 이상”이란 게 김 목사의 설명이다. 더군다나 방 목사의 유명세에 비한다면 김 목사는 거의 무명에 가깝다. 얼마든지 인간적인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섭섭하냐구요? 이런 어른을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오히려 목사님을 모시기에 좋은 장소도 더 많이 가는 걸요. 제가 목사님 때문에 가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목사님 때문에 제가 뜨는 겁니다.”

김 목사에게 방 목사는 ‘선배 원로목사’ 그 이상이다. 김 목사는 연세대 신과대학 시절이던 1970년대 초반 강의를 통해 방 목사를 만났다. 이후 방 목사의 요청으로 영등포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거기서 2년 반의 사역은 김 목사에겐 평생의 목회 방향을 결정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목사님은 대심방을 1년에 두 번 하셨어요. 그런데 대심방을 끝내고 하루는 갑자기 용인을 가자고 하시는 겁니다. 속으로 ‘바쁘신 분이 용인엔 누가 있기에 가시나’라고 생각했죠. 용인의 어느 방직회사를 찾아가 경비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공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오는 거예요. 목사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시골 출신의 보잘것없는 여공 한 명을 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찾아가신 겁니다. ‘목자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걸 그때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솔선수범하는 목회자상(像)도 이때 새기게 됐다. 담임목사였던 방 목사는 새내기 전도사였던 김 목사에게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적이 없다. 늘 말보다는 행동으로 앞장서서 본을 보였다.자신도 모르게 김 목사는 방 목사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며 터를 잡아가던 그가 고민 끝에 영등포교회 부임 요청을 수락한 것도,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라는 섬김 받을 수 있는 지위를 박차고 스스로 선배 목사를 섬기는 일을 택한 것도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목회자 방지일’ 때문이었다.

김 목사 인터뷰는 이렇게 방지일 목사 이야기로 가득했다. 김 목사는 “요즘 목사님이 식사를 잘 못하신다”며 “초조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에 요즘 더 바짝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에게 간청했듯 저의 기도도 방 목사님의 일을 조금이나마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릇이 못되는 것 같아요. 그분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복음과 십자가 정신을 이어가고 싶은데….”

한국 교회는 지금 은과 금은 많이 나누지만 정작 나눠야 할 복음은 뒷전에 밀려나고 있다는 게 김 목사의 진단이다. 2년 전부터 매주 인도하고 있는 직장 성경공부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도 복음과 십자가다.

그는 “한국 교회 성도들이 콩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콩나물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머리도 있고 뿌리도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숱하게 말씀을 귀로 듣지만 씹어서 삼키지는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성도들이 스스로 말씀을 곱씹고 성찰할 수 있도록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저 방 목사님 흉내만 내고 있을 뿐입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