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낸 홍용희씨 “詩作은 충만과 영원성을 현 시점에서 실현하는 것”

입력 2010-03-19 17:25


시란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 대한 극복 방식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온 평론가 홍용희(사진)씨가 네 번째 평론집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천년의시작)을 펴냈다.

그는 “시는 종교의 경우처럼 인간의 유한적 존재로서의 결핍의 지점에서 연원하는 것이지만, 종교가 인간의 맞은편에 충만과 영원의 세계를 설정하는 반면 시는 결핍을 발견하고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시적 창조 행위란 신 대신 인간과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며, 시인은 인간의 유한성이 존재의 본질적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작(詩作)은 충만과 영원성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실현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계화되고 물질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존재의 치명적인 위기를 맞은 인간에게 시는 구원과 치유의 상징이 된다. 그는 시적 상상력의 본령은 공자가 언급한 ‘시중지도(時中之道)’의 정신과 연관된다고 설명한다. ‘시중지도’란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삶의 근원과 본질에 해당하는 도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즉, 시의 세계는 현실 속에서 삶의 본질적 이치를 체득하는 경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현대시에서 ‘시중지도’의 정신을 읽어내기 위해 취하는 비평 도구는 1990년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본격적으로 제기한 정신주의 시학에 기대고 있지만 이번 평론집은 최 교수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밀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기계에 복종하는 기능적 인간이 아니라 창조적인 정신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고양시키는’(최동호, ‘한국현대시와 정신주의’ 중) 정신주의 시학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소중한 빛을 발한다.”(13쪽)

정신주의 시학은 어느 특정한 시의 유형이나 이데올로기에 국한되지 않고 이 모두를 포용하고 성찰한다. 특정 이념이나 형식론을 내세우지 않고,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기존 정신주의 시학의 이론체계에 대해 홍용희는 그간 문단의 적극적인 해석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신주의 시학이 현대 사회에서 시를 생존하게 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백석 정지용 김영랑 등 현대 문학사의 굵직한 자취를 남긴 시인들이 시에서 추구한 정신의 양상을 다룬 ‘시중지도의 정신’, 현재 활동하는 시인들의 언어와 시대정신을 포괄적으로 다룬 ‘절제와 절정’, 현대시를 주제별로 탐색한 ‘상상과 소통’이 그것이다. 시란 인간 정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론가의 믿음과 이를 입증키 위한 수고가 돋보인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