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판결 분석] 술 마셨다고… 폭력 안썼다고… 솜방망이 처벌 잦아
입력 2010-03-18 22:01
(2) 감경 위주의 아동성범죄 판결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각종 감경이 남발되기 때문이다. 감경제도는 판사의 재량을 보장해 가장 적합한 처벌을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온정적 판결 관행 탓에 엄벌해야 마땅할 사건에도 남용되고 있다. 특별히 보호해야 할 어린이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 법 감정에도 역행한다.
◇여전한 음주 감경=본보가 지난해 7월 양형기준 시행 이후 선고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 152건 판결을 분석한 결과 조두순 사건이 이슈로 떠올랐던 지난해 10월 이후 모두 4건의 아동 대상 성범죄에서 음주 상태가 감경요소로 인정됐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지난해 12월 찜질방 수면실에서 잠자던 12세 여아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38)씨 사건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해 양형기준 권고형량의 하한을 벗어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0월 12세 여아에게 유사성교행위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박모(32)씨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심신미약은 아니지만 다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음주를 정상참작 사유로 삼아 양형기준상 권고형량에 미치지 못하는 형량을 선고했다. 찜질방에서 6세 여아에게 “발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접근한 뒤 몸을 더듬은 사건에선 감기약을 과다 복용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이 감경요소로 인정됐다. 양형위원회는 조두순 사건으로 음주 감경이 논란이 되자 지난달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지 않은 음주 상태의 범행은 감경사유로 반영하지 않는 내용의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아동 특성 고려하지 않은 위계·위력 감경=양형기준에 따라 양형이유를 기재한 118건 중 ‘위계·위력의 사용’이 특별감경인자로 인정된 사례는 33.1%(39건)에 이른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 3명 중 1명이 ‘위계·위력’ 덕분에 형이 깎인 것이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11세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모(29)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 아동에게 인터넷에 나체사진을 올리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별다른 폭행·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계·위력을 인정해 강간 범죄의 가장 낮은 형을 선고했다. 위계·위력이란 속임수를 쓰거나 힘을 과시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요소다. 특별감경요소가 특별가중요소보다 많은 경우 하한형이 6개월∼1년 낮아진다. 하지만 13세 미만 아동은 별다른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제압되기 때문에 ‘위계·위력’을 감경요소로 반영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판사만 알 수 있는 작량감경 사유=범죄에 정상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으로 형을 줄여주는 ‘작량감경’ 제도도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엄격한 처벌을 가로막는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11월 아내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는 8세 여아를 1년 동안 10차례 강제 추행한 김모(59)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상적인 심신발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피해자 및 부모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작량감경을 선택해 형량을 절반으로 줄여줬다.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으며 반성하고 있는 점,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가정환경, 범행 후 정황 등 여러 양형조건을 모두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작량감경 사유를 기재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지만 판결문을 받아든 피해자 가족은 좀처럼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다. ‘상당 금액 공탁’ ‘수감될 경우 부양가족의 생계 곤란’ 등 피해자 입장에선 선뜻 이해하기 힘든 참작 사유도 다수 눈에 띄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