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에 기부금 강요한 대형병원 첫 제재
입력 2010-03-18 18:48
건물 건립 등을 위해 제약회사에 기부금을 강요한 대형 종합병원들에 처음으로 과징금이 부과됐다. 그러나 제재 수위가 낮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병원 건물건립이나 부지매입 명목 등으로 제약회사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연세의료원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5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울대병원, 아주대의료원은 과징금 없이 시정명령 조치만 받았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톨릭중앙의료원은 2005년 1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의대 학생회관을 짓기 위해 제약사들로부터 170억9900만원을 모금했다. 연세의료원은 2005년 3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병원 건립을 목적으로 61억400만원을 모았다. 서울대병원과 아주대의료원도 수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공정위는 이들 병원이 거래상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기부금을 요청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인 이익제공강요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순수한 기부금이 아니라 약자인 상대방에 부담을 전가시켰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들도 병원 측의 요구를 사실상 강요나 압력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해당 병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공정위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반면, 연세의료원은 “당시 기부금은 대가성이나 강요에 의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수긍할 수 없고, 조만간 소송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반발했다.
공정위가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을 제재한 것이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확인된 기부금 액수만 수백억원대인데 불과 5억원 남짓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들에 4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또한 4개 병원 외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다른 병원들의 명단이 빠진 것도 문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몇몇 병원은 시정명령조차 받지 않았다”며 “공정위가 병원이나 제약회사 모두 강하게 처벌하겠다지만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