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김명호] 환율전쟁과 G20
입력 2010-03-18 19:24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던진 한 마디는 올 11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우리에게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다가온다.
오바마는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 수출입은행 연례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환율 정책 변경을 촉구하면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G20을 통해 이 같은 불균형을 시정하는 일에 리더십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환율 갈등을 풀기 위해 G20을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오바마는 미국의 심각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리밸런싱(rebalancing)을 주장해 왔고, 그것의 핵심 해결책으로 중국 위안화 절상을 지목하고 있다. 오바마는 중국을 압박 또는 설득하기 위해 여러 나라가 자신의 편에 서서 같이 행동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입장은 17일자 뉴욕타임스(NYT) 사설에 정확히 반영돼 있다. NYT는 양국 간 환율 문제로 인한 파국을 피하려면 다자 간 무대로 이 문제를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게 양자 간에 설득력이 있고, 정당성을 더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연합 인도 한국 등이 중국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자기편에 서서 도와 달라는 얘기다.
중국은 어떤가. 오바마가 이례적으로 중국 환율을 직접 거론한 11일은 정협과 전인대가 열리는 양회기간(3∼14일)이었다. 가장 큰 정치행사 중에 가장 민감한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중국을 압박하려는 상당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의 불쾌감은 정말 대단했다. 중국의 심경은 14일 전인대를 마치며 원자바오 총리가 작심하고 날린 “남의 나라 환율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는 경고에 압축돼 있다. “북·미 관계 악화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까지 말했다. 미국의 환율 공세는 내정간섭이라고 간주하는 수준이다.
양국의 환율 전쟁은 이미 초입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양국 모두 파국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가 언급한 G20에서의 환율 문제 논의는 실현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G20 서울 개최’ 의미는 뭔가.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국가들의 협의체다. 세계 경제 시스템을 논의하고 구축하는 자리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영속적인 G20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 리딩 그룹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G20 서울 개최는 이를 구축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국운 상승 계기라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같이 중요한 G20이 미·중의 환율전쟁터가 되거나 대리전을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땅을 칠 노릇이다. 환율뿐이 아니다. 미국은 강력한 금융규제 방안, 이른바 ‘볼커 룰’ 공동 도입에 대해서도 G20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사실 오바마가 추진하고 있는 ‘볼커 룰’은 우리 시장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요소도 있다. G20 국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러한 문제들이 서울 G20 회의에서 주요 이슈로 제기된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목표하는 국운 상승 계기가 마련되는 G20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주요국들의 날 선 비판과 반박으로 실패한 회담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국들은 G7 체제 복귀 또는 G10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 자리에는 아직 한국이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이슈 관리(issue managing)가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장국은 주요 의제를 조율하고,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미·중 환율 전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이슈 관리와 나아가 이슈를 선점하는데 의장국으로서 여러 가지 유용한 지렛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G20 이슈 관리 성공 여부가 정말 국운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정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