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동수] 카인 교도소장의 흉악범 교화
입력 2010-03-18 18:33
“징벌만 강조하는 교정행정으론 불충분하다. 인격적 교화까지 이뤄내야 한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베이튼 루즈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미국 최대의 흉악범 수용소 루이지애나 주립교도소가 있다. 맨해튼만한 면적을 가진 이 거대한 교도소는 ‘앙골라’란 별칭으로 불린다. 열악한 수용환경과 학대, 야만성 때문이다.
3면이 미시시피강으로 둘러싸인 이 교도소엔 5000여명의 재소자들이 있다. ‘앙골라’에서의 평균 형량은 80∼90년에 달한다. 대다수가 살인, 조직폭력, 성폭행 등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탓이다. 워낙 중죄인들이라 가석방이 허락되지 않는다. 죄수들은 입소한 그 순간부터 콘크리트 막사와 단조롭고 습기찬 공기만 마시다 여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런 죽음조차 사치다. 갑작스레 일어나는 칼부림이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재소자가 부지기수였다. 수많은 재소자들이 동료 죄수들의 손에 죽어갔다. 시신들은 장례 절차도 없이 값싼 널빤지로 만든 관에 들어가 미시시피강 제방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묻혔다. 이런 살벌함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미국판 바스티유 감옥’이라고 불러왔다.
이 지옥 같은 교도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995년 초 벌 카인이라는 교도소장이 부임한 것이 계기였다. 은발에 자그마한 체격의 이 교도소장은 농부 출신의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전임자는 그가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겁을 줬지만 카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부임 첫날 한 일은 식당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저급한 음식을 만들던 주방장에게 음식의 질을 높이라고 지시했고 간수들에겐 죄수들에게 모욕과 욕설을 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또 재소자들에게 공부나 취미생활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도록 새로운 기회들을 열어줬다. 무엇보다 재소자들을 감동시킨 건 사망한 재소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장중한 장례의식을 치러준 것이었다.(짐 심발라 목사의 증언)
이런 감화 프로그램은 ‘앙골라’를 몰라보게 변모시켰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10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예술가와 신문편집인, 가수 등으로 거듭나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공동침실과 샤워실, 거대한 집단욕조가 있는 목욕탕, 배구 코트와 잔디밭, 복싱경기를 할 수 있는 링 등을 본 방문객들은 “일반 기숙사 생활과 다름없다”며 감탄한다.
교도소 내 경기장에서 매년 열리는 로데오경기와 예술작품 전시회 때면 인근 주민들도 몰려와 축제를 연출한다. 미국 언론들은 “어둠과 저주가 지배하던 이 교도소가 재활의 기운과 평안이 숨쉬는 장소로 탈바꿈했다”며 칭송했고 전미(全美) 교도소들의 벤치마킹 코스가 되었다.
김길태 사건 이후 정부는 청송교도소를 흉악범들을 집중수용하는 교도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력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흉악범들을 더욱 엄중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프로그램이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구금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현재 국내 재범률은 50%에 이른다. 교통사고범과 우발·격정범 등 재범우려가 없는 사람을 제외한 ‘직업적’ 범죄자들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은 80%대로 훌쩍 올라간다. 감옥생활을 오래 할수록 범행수법만 배우고 더 지능적이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김길태도 재범 고위험군에 속했지만 수감생활 중 재범 방지를 위한 교정 교육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징벌만을 강조하는 ‘응보주의’는 교정 행정의 절반일 뿐이다. 이것이 100%가 되려면 사랑과 감화를 통한 ‘회복주의’도 함께 가야 한다.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수감생활이 당사자의 전인격적 교화로까지 이어져야만 교정 행정의 목적이 온전히 달성될 수 있음을 루이지애나 교도소는 잘 보여준다. 사실 벌 카인의 혁명은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에 가능했다. 기독교적 사랑과 신앙이 없었다면 흉악한 죄수들을 그렇게 대하고 이끌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는 10월 문을 열 국내 첫 민영 기독교 교도소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