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재범을 막아라… 공주 치료감호소 ‘긴장의 24시’ 르포

입력 2010-03-18 19:26


‘호텔급’ 시설서 교육 … 완치 안되면 못나가

철컹철컹! 스포츠머리에 줄무늬 환자복의 남자가 달려와 철창에 매달리더니 쇠창살을 마구 흔들었다.



“우리 얼굴은 안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난 표정에 목소리는 높았다. 지난 9일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옛 공주치료감호소) 인성치료재활센터 출입문을 지나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복도와 수감자 휴게실 사이에는 15㎝ 간격으로 쇠막대를 촘촘히 세운 철창이 있었다. 휴게실에서 탁구 치던 수감자가 카메라가방 멘 사진기자를 보고 달려온 것이다. 그 뒤로 벽에 기댄 중년 남자, 반팔 티셔츠를 어깨까지 걷어 올린 젊은 남자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 찍어, 왜 카메라가방만 보고 그래. 얼른 운동이나 해.” 함께 걷던 여성 간호사가 그를 달랬다.

인성치료재활센터는 소아성기호증(어린이와의 성적 접촉을 선호하는 정신질환) 등 성적 정신질환을 가진 성범죄자만 수감하는 곳이다. 현재 4개 병실에 28명이 있다. 그 남자는 병실 대표 중 한 명이었다.

왜 이렇게 카메라에 민감해하느냐는 질문에 간호사가 설명한다. “(부산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 사건으로 성범죄자 처리 문제가 이슈잖아요. 전자발찌 소급 적용이나 화학적 거세 얘기가 나오니까 다들 초조해하고 있어요.”

정부는 2008년 치료감호법을 개정해 성범죄자도 다른 정신질환자처럼 치료감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치료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인성치료재활센터(이하 인성센터)가 설립됐다. 사법 사상 처음 처벌 대신 치료를 받고 있는 성범죄자 28명, 과연 이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너 ‘성폭’이라며?”

인성센터는 한산하고 깨끗했다. 병원 관계자는 “다른 수감자와 철저히 격리한다. 서로 마주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교도소에서도 성범죄자는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저질’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가 병원에도 전파된 것이다. 과거에는 약물중독자만 격리 수용했다.

1층에 교육관이 있고, 2층과 3층엔 각각 7인실 6개, 1인실 9개(격리보호실 포함)의 병실이 있다. 보유 중인 병상은 100개. 내년에는 200개 병상을 추가로 만든다. 한 병실에 70명 정도 수용되는 이곳 일반 병동에 비하면 ‘호텔’이다.

인성센터에는 정신과 의사 1명, 간호사 4명, 간호조무사 10명, 일반직원 5명이 근무한다. 여성 간호사, 조무사는 인성센터에 발령되면 동료들로부터 “너 ‘성폭’(성폭력 범죄자를 담당한다는 뜻)이라며? 고생 많겠다”는 위로를 받곤 한다.

한 여성 근무자는 “이들은(인성센터 수감자) 죄책감이 거의 없고 끝없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다. 운동장에 소변기를 만들어 달라, 영치금을 넣어 달라, 면회 좀 주선해 달라…. 아직 개소 초기라 지나치게 잘해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여성 간호사나 조무사를 성희롱하는 경우는 없을까. 다른 여성 근무자는 “대부분 어린이, 여중생 등 특정한 대상에 성적 환상을 갖고 있어 근무자를 희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은 인성센터 여성 직원의 야간 근무를 금지하고 있다.

이날 1층 교육관에서 인지행동치료 교육이 있었지만 몇몇 수감자는 “아프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니 적응할 시간을 달라”며 병실에 남았다. 중앙관리실 CCTV로 보니 누워서 책, 신문, TV를 보거나 이불을 갖고 서로 장난치고 있었다.

슬리퍼 신고 복도를 걷는 중년 남성이 CCTV 화면에 잡혔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 서 있거나 뭔가 중얼거리기도 했다. 56세인 그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해 징역 13년에 치료감호를 선고받고 지난해 12월 수감됐다. 진단명 소아성기호증. 동종 전과가 있는 재범자다. 보호자는 없다.

일정 기간 관찰이 끝나면 약물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로부터 허리디스크 치료도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파렴치범이지만 옆에서 겪어보면 일반인과 비슷한 부분도 있다. 다만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성폭 24시

인성센터 기상 시간은 오전 6시다. 7시30분 아침을 먹고, 8시10분 체조를 한다. 9시30분에 수간호사가, 11시에는 병원장이 회진한다. 두 차례 회진 사이에는 건물 밖에서 운동 등 야외활동이 진행된다.

11시50분 점심식사가 시작되고, 낮 12시30분부터는 낮잠시간이다. 한 달에 두 번 오후 1시부터 영화를 보는데 지난달 상영작은 ‘해운대’였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인성치료를 받는다.

인성센터는 성실성 협조성 등에 따라 수감자를 다섯 그룹으로 나눈다. 1그룹이 가장 ‘악질’이고, 5그룹으로 갈수록 모범적이다. 강당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영화 관람은 3∼5그룹만 가능하다.

면회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보호자 편의를 위해 수시로 이뤄진다. 오후 치료와 교육이 끝나면 자유시간과 야외활동 기회가 주어진다. 이때 보통 영치금으로 매점에서 간식을 사먹는다. 오후 5시40분 저녁을 먹고 다시 자유시간. 취침은 오후 9시30분이다.

국립법무병원은 범죄자 가운데 형사처벌을 하기 힘든 중증 정신질환자를 격리해 치료하는 시설이다. 당연히 약물치료가 이뤄지지만 인성센터 수감자 중 약물치료를 받는 사람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최상섭 원장은 “성욕감퇴용 항우울제(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를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 충동이나 분노를 조절하는 프로그램으로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약물 대신 왜곡된 성 의식을 바로잡는 ‘교육’으로 치료한다는 뜻인데… 왜?

최 원장은 “효과를 높이려면 여성 호르몬을 투여해야 하는데, 그러면 ‘화학적 거세(약물로 성욕을 줄이는 것)’에 해당돼 처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화학적 거세 도입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범죄자 인권과 재발 방지 기능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만으로 재범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법정에서 징역 몇 년을 선고하든 치료감호자는 완치되기 전엔 절대 퇴소할 수 없습니다. 지금 수감돼 있는 28명이 언제쯤 완치 진단을 받고 나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징역 3년에 치료감호가 선고될 경우 3년 안에 치료가 끝나면 교도소로 돌아가 나머지 징역 기간을 채운다. 그러나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하면 약물중독(최장 2년)을 제외하고 최장 15년까지 치료감호 기간이 연장된다.

인성센터 수감자 28명은 개정 치료감호법 적용 1세대다. 이들의 치료감호를 종료할 최종 결정권은 법무부에 있다. 이들이 퇴소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다면 치료감호 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다. 최 원장은 “성범죄자는 마약중독자와 같다”며 “약물중독을 치료하는 것처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파렴치범이 좋은 시설에서 ‘대접’ 받는 것 같지만 다시 사회로 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들렸다.

공주=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