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공간 너머] 三代의 한 세기

입력 2010-03-18 17:58


세대차이니 세대갈등이니 하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일상용어가 됐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적혀 있으니,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못마땅하게 보아 온 역사는 아주 길다. 그러나 ‘산업사회 1년은 그 이전 시대 100년에 맞먹는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옛날의 세대갈등은 요즘 기준에선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세대 간 의식 차이가 두드러진 것은 ‘자본주의 산업화’ 이후였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세대(generation)란 ‘공통의 체험을 기반으로 공통의 의식이나 풍속을 전개하는 일정 폭의 연령층’이다. ‘일정 폭’을 둘러싸고 이론(異論)이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대략 30년 단위로 세대가 바뀐다고 본다. 이 일반론에 기초해 지난 한 세기 이 땅에서 살아온 3대(三代)의 삶을 개연성의 틀 안에서 살펴보자. 다만 ‘세대 차’는 ‘계층 차’나 ‘성(性) 차’보다 부차적으로 취급되니 대상은 ‘고등교육을 받은 서울 태생 남자’로 한정한다.

먼저 1910년 태어난 1대 김씨. 3·1운동 이후 불같이 번진 ‘실력양성운동’에 감화 받은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도 그를 가르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열여덟 살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나 몇 년째 계속된 불황 탓에 취직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1929년에는 세계대공황이 조선에까지 밀어닥쳤다. ‘고등실업자’로 빈둥거리던 그를 구해준 것은 1931년 만주사변이었다. 이후 그는 주말이면 처자식 데리고 화신백화점 구경도 하면서 7∼8년간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성시대도 끝났다. 공출이다 배급제다 하면서 모든 것을 군수물자로 빼앗아 가니 하루하루 생활을 유지하기도 벅찼다. 서른다섯 살에 해방을 맞았지만 세상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마흔 살 되던 해 급기야 6·25전쟁이 터졌다. 5남매를 거느리고 부산으로 피란 가 모진 고생을 겪었다. 휴전 이후 서울로 돌아와 미군 물건 떼어다 팔면서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 나갔다. ‘잘 살아보세’ 노래가 울려 퍼지던 무렵,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는 가끔 ‘왜정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지만 고등보통학교 동창 중에는 오래 산 축에 속했다.

1940년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2대 김씨. 말을 알아들을 무렵 그의 이름은 다카기 히데오였다. 젖을 떼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다. 다섯 살에 해방을 맞아 한국 이름을 되찾았지만, 굶주림은 여전했다. 6·25전쟁 중 피란지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천막학교를 다녔다. 형과 누나들 덕에 대학에 진학한 그는 2학년 때 4·19에 가담했으나, 군 복무를 마치고는 한동안 대학생활의 낭만을 누렸다.

대학을 졸업한 1966년부터 한·일 협정과 베트남 파병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취직한 신생 기업은 나날이 커졌고 그의 지위도 덩달아 높아졌다. 굶주린 기억 때문에 자식들만은 배곯게 하지 말자는 게 인생 목표였고 그는 성공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로운 퇴직을 택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덕을 보며 큰 불편 없이 산다. 그의 삶은 ‘세계 최빈국 어린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노인’이 되는 발전 과정이었다. 평생 ‘팽창하는 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모 재벌총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걱정이 있다면 사십 줄에 접어든 자식이 ‘고생을 겪지 않아 아직도 철이 없는 것’ 정도이다.

2대 김씨의 맏아들 3대 김씨. 1970년생. 좋은 직장에 다닌 아버지 덕에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베이비붐의 끝자락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이미 ‘꽉 차 있는 세상’을 경험했다. 또래 친구 모두가 경쟁 상대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도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그에게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건만, 고등학교 졸업자의 반 이상이 대학생이 되는 시대였으니 다시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했다.

어렵사리 대기업에 취직했으나 이듬해 겨울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는 재수가 없어 정리해고 됐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아버지 퇴직금을 빌려 이것저것 자영업에 손댔지만, 하나같이 조금 장사가 된다 싶으면 경쟁업체가 무수히 생겨났다. 그는 ‘세계는 넓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누군가 선점했다’고 느낀다.

어느 세대의 삶이 더 행복했는지 따지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삶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관념일 뿐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세대갈등은 한 세대가 자기 삶에서 얻은 ‘고정관념’을 다른 세대에 강요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니 모든 세대가 한 가지 세계관으로 ‘통합’되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자기 세대보다 훨씬 많은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 할 2000년생 4대 김군이 겪을 세상은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낼 것이다. 2대 김씨에게 진짜 고생은 ‘과거의 일’이었지만, 4대 김군에게 끔찍한 고생은 ‘미래의 일’일 수도 있다.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