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 나라의 라이프스타일
입력 2010-03-18 17:25
마태복음 6장 24∼34절
어떤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보면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다가도 돈 하면 벌떡 일어날 것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앉으나 서나 사랑하는 사람 주위를 맴돌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다 알아서 챙겨야 하는 곤비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마치 노숙인처럼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매사가 다 근심거리요, 순간순간이 염려의 연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염려의 굴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도 아무 염려 없도록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염려하지 않아도 늘 고운 옷으로 입히시는데 ‘하물며’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을 먹이고 입히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하물며’라는 방점의 포스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천국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보다 이런 숙명적 염려를 넘어서는 존재양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혹 하늘이 꺼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 ‘하물며’의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왕자의 자리를 회복했으면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다니며 가난에 찌들고 불안한 삶을 살던 때를 그리워하고 사모한다면, 이는 뭔가 모자라거나 아니면 머리가 좀 이상해진 왕자일 것이며,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는 여전히 뼛속 깊이 거지임이 분명합니다.
오랜 세월 찌든 염려의 습관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이 엄습해 오는 불안과 근심에 어느새 압도당할 때가 더러 있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만일 추구하는 바가 여전히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먼저’라는 말은, 우선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다음으로 우리의 쓸 것을 챙기라는 순서적인 의미라기보다 ‘다른 어떤 것보다’의 의미입니다. 사실 양다리 걸치기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여전히 우리의 주요 관심사인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헤아려 주실 것이기에,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좇는 고상한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염려하는 의식주 문제도 덤으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하며, 믿음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릅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전처럼 염려로 일관된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당장은 모험이 따르고 위험부담이 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고상한 삶을 살 것인지, 오직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위험과 고난이 따르더라도 믿음의 길을 선택함으로 염려 없는 인생이 되고, 도리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드리우는 후회 없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권영석 목사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