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값 990원 속에 숨은 비밀은… ‘경제학 카운슬링’
입력 2010-03-18 19:28
경제학 카운슬링/ 팀 하포드/웅진지식하우스
인생에는 많은 고민거리가 있다.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어떻게 하면 마트 계산대에서 빠른 줄을 찾을 것인가 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문제는 수도 없이 많다.
모든 문제에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항상 정답을 찾아 나선다.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위원이자 칼럼니스트인 팀 하포드는 이런 문제를 경제 이론을 동원해 설명한다. 그는 “경제학자는 집안의 고민 상담사인 고모나 이모처럼 맞장구를 치거나 안타까워하며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면서 “위안 대신 전문용어를 들먹이며 최적 실험 이론을 노골적으로 설명하지만 그 조언은 놀랍도록 쓸모가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책은 하포드가 2003∼2008년 ‘파이낸셜 타임스’에 연재한 ‘디어 이코노미스트’ 칼럼 중 150여 편을 선별해 모은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을 생각해보자. ‘선하차 후승차’ 캠페인을 벌이고 두 줄 서기도 시행 중이다. 그런데 잘 안 지켜진다. 빨리 타려는 욕심을 부리는 몇몇 사람 때문에 타고 내리는 것 모두 지연된다. 이는 게임이론 중 ‘죄수의 딜레마’ 이론으로 설명된다. 두 사람이 게임에 참가해 서로 이익을 내려고 행동하지만 모두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빨리 타고 내리려는 행동은 무질서를 초래하고 지하철은 지연된다. 모두에게 손해다. 하지만 타는 이의 관심은 지하철이 빨리 가는 것보다 자리를 확보하는 데 있다.
자리를 차지하려면 가장 먼저 타야하고 질서를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경우도 타고 내리는 과정이 비슷하지만 지하철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좌석을 확보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건 가격이 990원으로 끝나는 이유는 소비자가 싸다고 느끼게 하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로체스터 대학교 경제학자 스티블 랜즈버그는 부정직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물건 값이 1만원, 2만5000원 등 딱 떨어지는 것으로 정해지면 소비자는 정확한 액수를 낼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점원은 물건을 바코드 스캐너에 찍지 않고 그냥 포장해서 손님에게 건네고 돈은 자기 주머니에 챙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고 파악 때 손실이 나타나면 손님이 훔쳐간 것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하지만 뒷자리가 복잡해지면 잔돈을 거슬러줘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진다. 잔돈이 생기는 걸 싫어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경제학 법칙은 연애에도 적용된다. 남녀가 서로 진심을 파악하는데 ‘선별 이론’이 사용된다. ‘선별 이론’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만든 것으로 의미 없는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이게 하는 것보다 직접 행동을 강요함으로써 숨겨진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그는 이 이론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한 남녀가 있다. 남자는 자기 소유의 아파트가 있는데 같이 살더라도 이 아파트는 그대로 두겠다고 한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라고 이유를 댄다. 이럴 때 여자는 남자의 본심이 뭔지 고민하기보다 직접적으로 “아파트를 처분하라”고 하는 편이 낫다. 남자가 여자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면 아파트의 가치는 그만큼 하락하기 때문이다.
하포드는 TV가 자녀교육에 나쁘다는 편견도 경제학자의 연구를 인용해 반박한다.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자인 매슈 겐츠코와 제시 샤피로는 TV가 아이의 성적과 진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TV는 큰 영향이 없고,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밝혔다. 뉴욕은 1940년에 TV가 보급됐는데 덴버는 1952년에야 TV가 들어왔다. TV가 나쁘다면 뉴욕 아이들이 더 안 좋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TV를 보는 것 자체보다 아이가 TV를 보게 되는 집안 분위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더 사소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있다. 사라진 양말 한 짝 때문에 고민이라면 고민하는 대신 똑같은 양말을 많이 사두는 편이 낫다. 양말 한 짝이 없어지면 나머지 한 짝의 한계가치(특정한 제약이 주어진 상태에서 유효한 가치)는 0이다. 같은 양말을 여러 개 사두면 양말 한계가치는 무시된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양말 한 짝을 찾아 시간을 허비하는 건 여러 모로 낭비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