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 판결 분석] 법원, 뿌리깊은 온정주의… 아무때나 정상참작
입력 2010-03-17 21:29
(1) 국민 법감정과 괴리 있는 판결
지난해 7월부터 13세 미만 아동 상대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기준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하한 편향’ 판결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두고 양형기준 자체가 법관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온정적 판결 관행을 반영해 낮게 설정됐고, 이런 양형기준이 또다시 낮은 형량의 선고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렴치범에게도 법정형 하한 선고=대구지법은 동거녀의 딸(11)을 9개월 동안 9차례 강간하고 1차례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지난해 11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간음해 죄질이 매우 불량한 점, 아직까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점 등을 모두 참작해 선고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3세 미만 아동 대상 강간 범죄를 징역 7년 이상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가 김씨의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법정형 하한을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양형기준 시행 이후 13세 미만 아동 대상 강간범죄(이종범죄 경합사건 제외)에서 가장 처벌 수위가 높았다. 분석 대상 14건 가운데 13건이 7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았다. 이 중 5년 이상∼7년 미만과 3년 이상∼5년 미만이 각 6건이었고,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도 1건 있었다. 5차례 이상 강간을 저지른 2건과 10차례 이상 강제추행을 저지른 2건에서도 각각 법정형에 미치지 못하는 형량이 선고됐다. 이처럼 법정형보다 낮게 선고가 이뤄지는 것은 형법이 심신장애 등 법률상 감경 사유 외에 법관 재량으로 정상을 참작해 형량을 깎아줄 수 있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양형기준도 하한에 몰려=양형기준을 놓고 분석한 118건의 판결도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양형을 실현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하한형에 편중됐다. 각 영역의 상한과 하한을 평균값으로 한 지점을 중간점으로 설정했을 때 중간점보다 높게 선고된 사건은 118건 중 4건(3.4%)에 불과했다. 68.6%(81건)는 하한 또는 하한보다 낮은 형이 선고됐다.
이처럼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 관대한 판결이 나오는 것은 1차적으로 법관 사회에 만연한 온정주의적 판결 관행 탓이라는 지적이다. 양형기준 설정 당시 “권고형량을 판결 관행보다 급격히 높이면 일선 법관들이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양형기준 자체가 법정형보다 낮게 설정된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관대하게 만들어진 기준이 판결에 적용되면서 낮은 형량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양형기준이 설정한 13세 미만 대상 강간(법정형 징역 7년 이상)의 가중영역은 징역 6∼9년이다. 극도의 성적수치심 증대, 윤간, 임신을 초래한 범죄 등 죄질이 무거운 범죄가 해당되지만 법정형 미만인 징역 6년을 선고해도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대상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도 대법원과 양형위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17일 “아동 대상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수정해 의견 조회를 하고 있다”며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 개선점이 있으면 계속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