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의료계 열린 대화 아쉽다
입력 2010-03-17 17:55
요즘 의료계 핫 이슈는 단연 ‘카바(CARVAR) 수술’과 ‘눈 미백술’이다. 전자는 심장 명의로 알려진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개발한 새로운 심장 판막 수술법이고 후자는 현직 개원 안과 의사인 김봉현 원장이 역시 처음 개발해 시술하고 있는 만성 눈 충혈 치료법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두 신의료술 모두 현재 안전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최종 검토하고 있다. 둘 다 적지 않은 환자들이 이미 시술받았거나 기다리고 있는 처지여서 안전성 여부는 특히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증 결과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대개 새로운 의료술이 나오면 정부 기관의 평가가 있기 전에 전문가 집단인 관련 학계가 나서서 1차 검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카바 수술과 눈 미백술을 두고 진행된 학계의 검증 과정을 보면 그간 국내 과학 및 의학계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온 ‘꽉 막힌 문화’를 다시 한번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나 의사들만큼 ‘닫힌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도 없다. 자신의 연구 분야나 성과 외의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과학자적 특성(?)은 ‘소통의 부재’로 이어진다. 서로의 마음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다 보니 그에 따른 고질적 병폐가 난립한다. 서로가 서로를 발목잡고 비방하고…. 학술적 검증보다는 소모적 논쟁에 매달리기 일쑤다.
카바 수술의 경우를 보자. 송명근 교수는 카바 수술이 기존 수술법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수차례 국내외 흉부외과 의사들을 초청해 수술 시연 및 소그룹 강의를 개최했다고 한다. 카바 수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카바 수술의 의학적 가치에 주목한 해외 의료진들은 몰려 온 반면 기존 수술을 고집하는 국내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은 무조건적 외면과 불참으로 일관했다. 일부 의사들은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다”며 깎아내렸다. 학계가 ‘부정적 편견’을 갖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린 것이다. 송 교수 또한 주변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지 않고 무조건 ‘내 방법이 옳다’는 독단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눈 미백술 검증 과정도 비슷하다. 김봉현 원장은 이 시술법의 부작용 위험이 제기되자 지난해 대한안과학회에 3개의 연구 논문을 제출했으나 발표 자체를 거절당했다. 또 대한안과의사회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공개 토론을 제안했지만 의사회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갑론을박의 과정을 통해 공개 검증을 받길 희망했지만 최소한의 대화와 토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국내 학계가 왕따시킨 거나 마찬가지다.
경직된 국내 학회와 달리 해외 학계는 풍토가 다르다. 아무리 기존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상이라도 우선적으로 개발자의 연구와 경험에 대한 존중을 해 주고, 철저히 학술적 근거에 준하는 다양한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실제 국내 안과학회가 거부했던 김 원장의 눈 미백술 논문은 미국학회와 아시아태평양학회 등에선 연제로 채택됐다. 또 카바 수술은 이달 말 유럽연합의 품질인증(CE)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선 배척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해외에서는 의학적 가치 및 안전성을 검증받게 된 것이다.
새로운 의료술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개발자와 검증 단체 간 공방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다. 의학이나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토론과 비판이 선결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서로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과학강국 입국을 원한다면 과학자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부터 버려야 합니다. 서로를 좀 끌어내리지 맙시다,” 얼마 전 만난 한 원로 과학자가 한 말이다.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놓기 위해 우리 의·과학계가 먼저 풀어야 할 숙제 아닐까.
민태원 생활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