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10)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STX 회장] “사업가 생명은 약속” 테러 위험에도 강행군
입력 2010-03-17 17:30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전후복구사업 참여를 위해 이라크를 방문한 지난 1월 26일. 이날 이라크 내 호텔 3곳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안전을 염려한 임원들은 그에게 귀국을 권유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사업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일정을 강행했다. 그는 예정대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바스라주에 300만t 규모 일관공정제철단지와 500㎿급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짓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테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킨 강 회장에게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이 높은 신뢰를 보낸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실적으로 이어졌다. 2월 25일 이라크 산업광물부와 바스라주에 복합석유화학단지와 기반시설을 짓는 MOU를 체결한 것이다. 그룹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나오는 만큼 직접 현장을 뛰어야 한다는 글로벌 경영철학이 반영된 개가였다.
강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1973년 쌍용양회에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이후 27년간 쌍용그룹에 몸담으면서 2000년 쌍용중공업 전무에 올랐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몰아친 그룹 유동성 위기로 쌍용중공업은 퇴출기업이 됐다. 당시 최고재무관리자(CFO)였던 그는 쌍용중공업 인수주체인 외국계 컨소시엄에 의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다.
하지만 자신이 젊음을 바친 회사의 가치를 잘 알고 있던 강 회장은 나이 50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쌍용중공업 주식을 직접 사들이기로 한 것. 결심을 굳힌 그는 가족들과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에게 “큰 결정을 내리려 한다. 일이 잘못되면 앞으로는 학비를 제대로 대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고백했다. 가족들은 강 회장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01년 2월 그는 상여금으로 받은 자사주(1000주)를 기반으로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또 당시 갖고 있던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등 사재 20억원을 투자했다. 가족들은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CEO로 재직 중 받은 스톡옵션 140만주도 큰 힘이 됐다. 행사가격은 5000원. 당시 주가가 1000원 안팎이어서 회사에서는 스톡옵션을 나눠 주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결국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 지분 14.4%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한 그가 자신이 다니던 기업을 인수, 오너 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후 강 회장은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7년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차례로 인수했다. 또 STX엔파코, STX중공업, STX건설, STX대련 등을 새로 설립하며 지금의 STX그룹 체제를 갖췄다. 2001년 출범 당시 매출 2605억원이던 STX그룹은 선박용기자재, 조선, 해운, 에너지 부문 수직계열화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2008년 매출은 28조원으로 8년 만에 106배나 증가했다.
최진식 심팩 회장은 “강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연관 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비즈니스 구상을 갖고 있었다”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산업에 대한 판단이 정확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글로벌 경영을 그룹 핵심이념으로 강조하고 있다. 조선·해운 시황이 본격 침체국면에 접어든 지난해에도 글로벌 경영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STX유럽 인수를 마무리한 데 이어 중국 다롄조선소 가동을 본격화하며 한국, 유럽, 중국을 잇는 글로벌 3대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2008년 요르단 시멘트플랜트 공사를 시작으로 중동 플랜트 시장에 진출한 STX그룹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관공정 철강플랜트를 수주해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마련했다. 최근엔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진출과 함께 100억 달러 규모 가나 공동주택 프로젝트 수주 등 중동, 아프리카 시장을 중심으로 미래 그룹 신성장동력인 플랜트·건설부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강 회장은 창업 10년째인 올해 신년사에서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해운·조선·기계 사업의 안정적 성장과 동시에 플랜트·에너지 및 자원개발사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인재경영’은 남다르다. 강 회장은 그동안 피인수기업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2004년 범양상선을 인수할 때는 더 좋은 처우를 약속했고 아커야즈 인수 시에는 반대하는 노조를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기업인으로서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5년 첫 그룹 공채를 꼽는다. “우수 인재들이 STX와 함께 자신의 미래를 펼쳐가겠다는 포부를 듣는 순간 흥분과 감동을 느꼈다”는 그는 이후 직접 신입사원 면접을 챙기고 있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