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여고생에 자퇴 강요는 차별”… 인권위,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첫 인정

입력 2010-03-16 18:47

국가인권위원회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퇴를 강요한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학교와 교육감에게 자퇴시킨 학생을 다시 입학시키고 임신한 학생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청소년 미혼모의 학습권을 인정한 첫 사례다.

인권위에 따르면 양모(46·여)씨는 지난해 4월 28일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 측이 딸에게 자퇴를 종용했다”며 “대학 입시를 앞둔 딸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인천 A고교는 지난해 4월 13일 입덧으로 괴로워하는 B양을 발견하고 다음날 양씨를 학교로 불러 “임신한 상태로 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으니 휴학할지 자퇴할지 빨리 결정하라”고 독촉했다. 동석한 B양의 남자친구가 항의하자 학교 측은 “미성년자를 임신시켰으니 (남자친구를) 형사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A고교 측은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B양이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은 당사자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학생이 임신했다는 사실은 ‘불미스러운 행동’과 ‘풍기 문란 행동’에 속해 퇴학 요건이 된다”고 답변했다. 실제 A고교 학부모들은 B양의 등교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학교 측 조치가 인권위법이 정한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교육시설 이용 차별행위’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또 학습권은 아동의 성장과 발달, 인격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관계자는 “임신을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면 평생 실업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 청소년 미혼모는 물론 그 자녀까지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A고교는 지난해 7월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B양의 재입학을 허락했다. 지난해 12월 4일 출산한 B양은 현재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세무회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편 인권위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성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 함께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보장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청소년 미혼모를 징계나 은폐의 대상으로 여기는 등 사회적 편견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해마다 청소년 미혼모가 증가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과 자립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