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권사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입력 2010-03-16 16:39
[미션라이프]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홍은혜(94·해군교회) 권사가 펜을 들었다.
“요즘 하나님은 부쩍 ‘나를 전하라’고 하셔.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전할 수 있겠어? 나이도 많고, 혼자 다니기에는 기력도 쇠한데… 문득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어쩌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 그 일 때문에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건 아닐까? 이 세상에 믿음의 간증을 남기고 싶어.”
극심한 가뭄으로 마실 물도 없어 사람들의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1917년 여름, 홍 권사는 강한 빗줄기와 함께 태어났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로 비가 내렸다”며 감사의 뜻으로 ‘홍은혜’란 이름을 안게 됐다. 이처럼 메마른 세상에 기쁨을 주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세상에 나온 홍 권사는 한일병합, 6·25전쟁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함께 만들어온 역사의 주인공이다. 평생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을 품고 살아온 해군 창설의 주역인 고 손원일 제독의 부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아버지는 바로 정동교회 목회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으로 활동했던 고 손정도 목사다.
홍 권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즐겨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음악과에서 공부했다. 정동교회 성가대원이었던 홍 권사는 그곳에서 손 제독을 만나 22세에 졸업과 함께 결혼했다. 해방 후 남편의 해군창설의 꿈을 함께 이뤄가며 ‘바다로 가자’를 비롯, 해군가를 작곡했다. 해군부인회 회장을 맡아 부인들의 삯바느질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 함정 백두산함을 구입하는 데 일조했다. 이 함대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을 실어 날랐다. 또 북한군 무장병력 600명을 태운 1000t급 수송선을 격렬한 전투 끝에 격침시켰다. 홍 권사는 전쟁 이후 병사들을 돌보기 위해 매주 수요일 병원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병사들의 이불 베개 옷 등을 빨아줬고, 편지를 써서 격려했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돕기 위해 해군 부인들과 함께 모금활동도 했다. 또 남편이 국방장관 시절에는 전쟁 미망인들을 보살피는 데 힘썼다.
“손 목사님(시아버지)은 저를 비롯한 후손들에게 자녀들에게 한결같이 ‘걸레의 삶’을 강조하셨어. 비단옷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야.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되잖아. 그만큼 중요한 도구야. 걸레와 같은 삶을 택해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어.”
해군들의 믿음의 훈련장인 원일다락방을 세운 홍 권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한다”며 신앙과 애국운동의 균형적인 삶을 강조했다. “해군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배를 타며 훈련하기 때문에 함정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함상예배위원들을 다락방에서 양육해서 파송하지. 이들은 함정에서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며 기독교 문화를 심는데 큰 역할을 했어.”
해군들의 영원한 멘토인 홍 권사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새벽 영락교회에서 모이는 예비역 기독군인연합회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으며 보육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스도인답다는 게 무엇일까. 늘 웃는 얼굴이 생각나고 부드러운 말씨, 고운 마음씨가 떠올라.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은 참 부드러워. 그런 모습으로 내가 받은 사랑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 홍 권사는 이런 삶의 이야기를 담아 최근 ‘은혜의 항해’(토기장이)로 출간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