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스미토모는… 2차대전 당시 자본금 100억엔 넘어 미쓰이 능가
입력 2010-03-16 18:37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④ 채탄·제련으로 전쟁지원한 스미토모
스미토모 그룹은 일본 3대 재벌 가운데 하나다. 스미토모상사,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스미토모금속공업 등 20여개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오는 5월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정기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출될 내정자도 스미토모화학의 요네쿠라 히로마사(72) 회장이다.
창업주는 스미토모 마사토모(1585∼1652)란 이름의 승려다. 가문은 원래 사무라이 출신이었지만 양친은 그가 승려가 되길 원했다. 출가는 했지만 염불에 별 관심이 없던 그는 1630년대 교토의 한 사찰에서 책과 약을 파는 상점 ‘후지야(富士屋)’를 세우며 승복을 벗어던졌다. 상점에 새긴 마사토모의 창업정신은 ‘정직하라, 베풀라, 깨끗하라’였다.
스미토모가(家)는 2대 때 오사카로 거점을 옮기고 동 제련 사업과 이 과정에서 추출되는 은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에도시대였던 1691년부터 1973년까지 282년간 일본 내 민간 유일의 동 제련 사업자로 총 70만t 이상의 동을 생산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미토모 본사가 투자한 기업 수는 120개를 넘었다. 공개적으로 밝힌 자본금만 100억엔을 넘겨 최대 재벌 미쓰이를 능가할 기세였다. 연합군 총사령부가 일본 군국주의의 ‘배후 조종자’로 중화학공업계 재벌들을 지목하면서 1945년 10월 본사의 해산을 알렸다.
하지만 스미토모의 총괄 이사였던 후루다 슌노스케는 고별사를 통해 “형태상의 연계는 없어졌다 해도 정신적인 연계는 결코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종업원들에게 주문했다. 이후 동서 냉전으로 미국이 일본을 전략적 동반자로 받아들이자 후루다는 1951년 요시다 내각의 최고경제고문 자리에 올라 소원대로 그룹 재결집을 이뤄냈다.
특별기획팀=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