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핵감축 합의… 서명만 남았다
입력 2010-03-15 22:01
최대 80% 감축 방안… 클린턴 내주 러 방문때 확정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협상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기존에 보유한 핵무기의 최대 80% 이상을 감축하는 획기적인 협상이다. 하지만 초강대국의 감축 틈새를 노린 중국, 북한, 이란 등의 핵무기 확보 노력은 전 세계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러시아 서명만 남았다”=러시아 정부는 13일 성명을 통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높은 수준의 합의’에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또 “협정 조인을 위한 구체적인 일자에 대해 논의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해 2∼3주 내 타결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마이크 해머 미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은 고무적이며 양국 정상은 후속 협정을 조만간 타결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냉전시대 핵무기 증강에 총력을 기울여왔던 미국과 러시아로선 ‘획기적인 사건’이다. 1980년대 중반 러시아는 4만5000기, 미국은 2만400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냉전시대 종결과 경제적 이유 등으로 91년 7월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에 합의했다. 군비 증강에 대한 휴전 의미로 양국은 각각 6000개의 핵탄두와 1600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을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93년 부시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에 서명했다. 2003년까지 ICBM을 500기 정도로 줄이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도 1750기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START-Ⅱ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이번 양국 간 핵무기 감축 협상은 사실상 START-Ⅲ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핵심 포인트는 말 그대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획기적인 감축’이다. 이를 위해 두 정상은 지난해 7월 핵무기를 7년 내 1500∼1675기만 보유하기로 합의했다. 폭격기와 핵 잠수함 등 운반체는 절반으로 줄여 800개 이하로 의견 접근을 본 상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다음주 러시아를 방문하면 서명 시점과 감축안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르면 다음달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앞서 서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핵무기 보유 9개국=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은 현재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NPT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핵보유국을 선언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실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다 핵 보유 선언을 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이란도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과학자연맹은 북한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최대 핵무기 보유국은 러시아다. 매년 1000기 이상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략 핵무기 2600기를 비롯해 1만2000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두 번째로 9400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 두 나라가 전 세계에 실전 배치 중인 핵무기는 각각 4650기와 2600여기에 이른다.
1992년 핵보유국으로 NPT에 가입한 중국은 이미 핵무기 240기를 갖고 있다. 전략 핵무기 180기를 실전 배치해 놓은 상태인데, 더 큰 문제는 실제 보유량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도 최대 10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게 미국 측 시각이지만, 전장에 배치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튼만 누르면 발사 가능하도록 현장에 배치된 핵무기가 무려 7900기나 된다는 점은 심각하다. 어떤 이유로든 핵무기 미보유국으로선 위협이 될 수밖에 없어 양국의 핵무기 감축 협상은 의미가 크다.
◇key Word : 전략·전술 핵무기
전략 핵무기= 대도시나 공업 중심지를 파괴하기 위한 것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전략 폭격기 적재 핵폭탄(ACLM) 등을 말함. 파괴력은 수백㏏ 이상.
전술 핵무기= 국지적 전투를 위한 소형 핵무기로 통상 파괴력은 20㏏ 이하.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