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性야수’도 인간적 접근하자 닷새 만에 무릎
입력 2010-03-15 18:31
살인범 김길태(33)가 형사의 인간적인 접근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10일 검거된 뒤 굳게 입을 다물었던 부산 여중생 이모(13)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의 자백에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흉악범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갔던 한 경찰관의 역할이 컸다.
“꼭 그분한테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수사관님을 불러주세요.”
김길태가 술술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사람은 수사본부 박명훈(49) 경사였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마친 14일 오후 김길태는 프로파일러와의 면담 과정에서 박 경사를 찾았다. 박 경사가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음 편하게 털어놓으라”고 하자 김길태는 울기 시작했다. 이어 이양의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부터 실토했다. 납치와 성폭행, 살인 전 과정을 털어놓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김길태는 다음날 박 경사한테 “빈 무속인 집에 들어간 시간은 캄캄한 밤이었고 이양 살해 후 아침에 눈을 뜰 때는 동이 틀 무렵이었다”고 진술했다. “이양에게 굉장히 미안하다”는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수사본부 신문조 소속이었던 박 경사는 그동안 조사 때마다 자신의 삶을 김길태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며 인간적으로 접근했다. 두 딸을 둔 박 경사는 “네가 딸을 둔 내 심정을 알겠느냐. 이양은 가정형편이 어렵고 이제 막 중학교에 진학하려는 아이였다. 너한테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아이가 그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느냐. 그런 애를 네가 짓밟으면 되겠느냐”고 감정에 호소했다.
그는 다혈질에 급한 성격인 김길태가 빨리 먹을 수 있는 자장면을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어린아이 대하듯 먹을 것을 제공했다. 잠을 자고 싶다면 그냥 자게 하는 등 최대한 편하게 대해줬다.
신문조는 이양이 목포에 사는 외사촌과 주고받았던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보여주며 김길태에게 이양의 내면과 정서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여성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길태의 모성에 대한 갈구를 자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을 것 같던 김길태도 “나도 너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스스럼없이 다가온 박 경사의 노력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묻지도 않았던 자신의 어릴 적 자라온 얘기도 털어놨다. 교회 앞에 버려졌다 양부모의 손에 들려 입양됐다는 출생의 비밀을 중학교 1학년 시절 알게 되면서 이후 내내 방황했다는 사실, 주벽이 있었던 아버지 얘기도 꺼냈다.
박 경사는 이양 부검 결과를 말해줄 때는 김길태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산=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