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우열반은 인권침해” 시정권고 내리지만… 대답없는 메아리

입력 2010-03-15 18:55

“선생님들은 ‘특반(특별반)’ 애들한테만 모의고사 프린트를 줬어요. 그러면서 ‘너희들 평반(일반반)은 줘도 풀 수 없지 않느냐’고 했어요.”

“좋은 대학에서 입시설명회를 오면 특반 애들만 참석시켰어요. 저희가 항의하자 ‘다음번엔 평반부터 입시설명회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어요.”

학급을 학생의 성적에 따라 나눠 편성하는 우열반 제도가 교육 당국의 허술한 관리 속에 근절되지 않고 있다.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9월 익명으로 “B고교가 전년도 성적 총점을 기준으로 2, 3학년 학생을 나누어 편성하고 성적이 나쁜 학생을 차별대우했다”고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진정 내용을 조사해 지난 1월 21일 “우열반을 편성해 차별대우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시정 조치를 권고했다. 하지만 해당 학교는 “성적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아직도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인권위 조사 결과 B고교는 2학년을 인문사회 집중이수과정(문과) 5개 반, 수학 과학 집중이수과정(이과) 2개 반을 운영하면서 전년도 전 과목 성적 기준으로 문과는 1∼60등을 4반과 5반에, 이과는 1∼30등을 6반에 편성했다. 3학년도 같은 방식으로 문과 2개 반과 이과 1개 반을 ‘특반’으로 운영했다. 2008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지된 우열반 편성이 버젓이 시행된 것이다.

B고교 측은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개인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조치”라며 “수준별 이동수업을 대체한 이상적인 학급 편성”이라고 답변했다. 오히려 “우열반 편성으로 짧은 기간에 학교가 발전했고,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해 11월 인권위가 B고교 재학생 20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특반 학생 88.9%가 ‘우열반 운영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평반 학생 78.5%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평반 학생들은 주로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평반)은 아예 상관도 안 한다. ‘문제 반’으로 인식하는 시선 때문에 불쾌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학교는 특히 입시지도 경력이 많은 교사를 특반에 집중 배치했다. “수준별 학급 편성은 입학할 때 학생들과의 약속이었다”는 학교 측 변명 역시 거짓으로 판명됐다.

감독은 허술했다. 교과부는 우열반 편성 단속이 시·도 교육청에 위임된 사항이어서 소관이 아니라고 답했다. 해당 교육청은 인권위 조사 이후 권고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지역 내 우열반 존재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나누고 차별대우한 것은 인권침해”라며 “해당 학교장에게 우열반 편성을 중단토록 하고 교육감의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했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