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좌식 선수 서보라미씨의 도전

입력 2010-03-15 21:38


하반신 마비상태서 시작한 스키…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만 난 안다, 홀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서보라미(24)는 15일(이하 한국시간) 넘어졌다. 캐나다 휘슬러의 패럴림픽 파크에서 벌어진 동계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좌식 10㎞ 경기 도중이었다. 출발은 무난했으나 3㎞ 지점에서 언덕 아래로 빠르게 내려와 방향을 틀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내리막길을 뒤따르던 다른 선수가 넘어진 그에게 부딪쳤다. 일어서 달리고 싶었으나 충돌 탓에 두 동강이 나버린 스키로는 더 달릴 수가 없었다. 언제나, 넘어진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2004년 4월 무용수를 꿈꾸던 파릇파릇한 고3 소녀였던 그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척수장애로 지체 1급 판정을 받았고 더 이상 하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서 무용을 하는 대신 병원에서 기나긴 재활을 해야 하는 시간은 힘들었다. 퇴원 후에도 좌절과 분노를 떨치기 어려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의 기도를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나는 넘어졌어. 넘어진 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손잡아 일으켜 달라고도 하지 않을 거야.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면서 내가 알게 된 건 세상은 장애물과 위험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과 넘어져도 결국엔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거야….’ 미니홈피엔 2005년 7월에 썼던 글이 남아 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처지에 꼭 들어맞는 얘기를 발견하고선 미니홈피에 올린 것이다.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다 만난 게 스키였다. 2006년 대학생 어울림 스키캠프에 참가한 그는 재활을 위해 스키를 배웠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키를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내리막을 달리는 게 스키의 기본이지만 내리막에 서기만 하면 몸이 떨렸다. 넘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좌식 스키는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는 넘어지는 게 두려워 넘어질 만한 일을 하지 않는 대신 더 많이 넘어져도 끝내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쪽을 택했다.

한 번 두 번, 하루 이틀 넘어지며 배우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하나를 극복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열 가지가 늘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까지 이겨내고 지난해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가 됐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국내에선 최고가 됐지만 세계와의 격차는 크다. 체력과 기술 모든 부분에서 사실상 이번 올림픽 출전 선수 중 하위권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만만하다.

서보라미는 “10㎞ 경기에 대한 아쉬움이 큰 만큼 5㎞에서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오는 19일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좌식 5㎞ 경기에 출전한다. 스물 넷의 크로스컨트리스키 선수 서보라미에게 포기는 없다.

밴쿠버=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