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11) 너만 잘난 매화냐

입력 2010-03-15 18:00


매화가지에 달 걸렸다. 달빛 내린 매화가 희여검검하다. 구새 먹은 몸통은 가운데가 쩍 갈라졌고, 긴 가지는 구불구불 벋나갔다. 사람 눈 홀리는 매화 시늉은 두 종류다. 외가지 꼿꼿이 치켜든 일지매-딴 마음 품지 않는 지조가 하늘을 찌른다. 잔가지 드레드레 늘어진 도수매(倒垂梅)-반가 규수가 입은 스란치마 끝단마냥 살랑거린다.

이 매화는 꼬락서니 촌스럽다. 뒤틀리고 구저분한 모양새가 처신사납다. 그린 이야 좀 날린 화가가 아니다. 조선의 화성(畵聖) 정선 앞에서 붓을 다잡았다는 현재 심사정이다. 꽃나무를 그리면 벌 나비가 꾀일 정도로 능란했던 그다. 지조는커녕 교태마저 저버린 이 매화는 화가의 어수룩한 붓장난일까.

옛 사람의 입방아는 매화 앞에서 수선스럽다. ‘얼음 같은 살결, 옥 같은 뼈대’란다. 어떤 이는 매화와 달과 미인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며 요란을 떤다. 대나무는 달그림자로 보고 미인은 주렴 사이로 봐야 하는데, 매화는 어느 틈으로 볼지 몰라 안달하는 문인도 있다. 그 잘난 매화 타령을 모으면 장강대하가 넘친다.

지금 남도로 가면 홍매, 백매, 청매 흐드러져 꽃멀미 난다. 모두들 은은한 향기를 탐내고, 차가운 미색을 반기고, 고고한 기품을 따진다. 궁벽한 시골 허름한 담장 위로 잘나지도 않은 낯짝을 들이민 심사정의 밤 매화가 큰 소리로 외친다. “나도 매화!”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