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무국적 휴대전화
입력 2010-03-15 18:00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이 얼마 전 방한해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삼성과 LG 등 한국 제품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아는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어요.”
사공 위원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섭섭했는데, 더 섭섭한 것은 막상 삼성과 LG는 전혀 섭섭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농반 진반으로 말했다.
삼성과 LG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외국에서 제품을 광고할 때 구태여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브랜드 가치보다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마케팅의 기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이지만 국가브랜드 순위는 33위에 머물고 있다. KOTRA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30% 가량으로 추산했다. 똑같은 제품일 경우 한국 제품은 유럽 등 선진국 제품에 비해 30%가량 싸야 구입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굳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강조해서 득이 될 게 없을 듯하다.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까지 출범시켰듯 국가브랜드를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국가브랜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세계인들의 호감도와 신뢰도로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1인당 GDP, G20 정상회의 같은 국제대회 개최, 외국인에 대한 친절도, 문화 수준, 수출제품의 품질, 스포츠를 통한 국가 인지도 향상 등.
PGA 무대에서 활약하는 프로골퍼 최경주는 자신의 골프화 오른쪽 뒤꿈치와 골프백 한가운데 태극기를 달고 있다. 한 기자가 이유를 물으니 “내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며칠 전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밴쿠버 올림픽 참가선수 가운데 마케팅 가치가 높은 선수로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인 숀 화이트(미국)에 이어 우리나라 김연아 선수를 2위에 선정했다. 이쯤 되면 스포츠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1등 제품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크게 적은 편이다. 그나마 있는 것도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감춰야 득이 된다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프랑스나 미국 사람들이 우리 휴대전화에 감탄하면서 “역시 일본이야”라고 생각한다는 뜻인데….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