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朴 회장과 ‘목욕론’
입력 2010-03-15 17:42
1974년 12월 포항종합제철 사보 ‘쇳물’에는 송년특집으로 회사 ‘어글리(ugly) 10대 뉴스’가 실렸다. 여기엔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의 ‘목욕론’이 3위에 올랐다. ‘직원 부인에게 목욕령 시달’이라는 해설까지 포함됐으니 직원들 사이에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박 명예회장은 당시 독신자숙소에 오면 꼭 목욕탕을 눈여겨 볼 정도로 지나치다 싶게 목욕을 강조했다. 직원 부인들에게도 항상 목욕을 강조하는 바람에 “우린 목욕도 하지 않는 줄 아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자 박 명예회장은 자신의 공장 관리원칙 1호인 목욕론을 직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 공보과장을 불러 30분 넘게 강의를 했다. 그는 “목욕을 잘해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사람은 정리정돈하는 습성이 생겨 안전 및 예방의식이 높아지고 제품관리 최후 절차인 포장까지도 깨끗이 할 수 있게 된다”며 “우리 회사는 안전 제일과 최고 제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나의 목욕론을 익히기 위해서는 부인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인데 희화화된 것 같다”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이 목욕론을 전파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한국이 한창 섬유 수출에 주력하던 그 무렵 외국에 나간 박 회장이 한국산 의류를 보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이유를 알게 된 그는 기가 막혔다. 한국산은 바느질이 신통치 않고 소매 등이 맞지 않아 하급품만 취급하는 지하실에 비치했다는 것이다. 항상 완벽을 추구하던 박 명예회장은 귀국하자마자 목욕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몸이 깨끗하지 못하면 옷이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른다. 목욕을 깨끗이 하면 입던 옷에 거부감이 생긴다. 자기 몸이 깨끗하면 주위의 지저분한 것, 바르지 못한 것, 정리정돈되지 않은 것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그 결과는 당연히 제품의 질로 나타난다.”
이후 그는 85∼87년 제철소 목욕탕 및 화장실 개·보수에 50억원을 들여 서울의 일류호텔 수준으로 개선했다. 직원들이 몸을 청결히 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 품질의식 향상과 안전사고 방지 및 현장 제일주의 실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목욕에 관해 박 회장은 나름대로 지론을 갖고 있다. 불결한 작업자가 무질서한 공장에서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 한다)가 아닐 수 없다. 박 회장의 목욕론은 과연 탁견(卓見)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