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위기는 끝났다?… 등기이사 보수 듬뿍 늘려
입력 2010-03-14 21:46
대기업들이 최근 주주총회에서 잇따라 등기이사 보수한도를 상향조정하고 있다. 경기침체에 보수를 동결하며 허리띠를 조르던 예년과는 달리 이제는 위기가 끝났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식회사의 최고결정 절차인 주주총회 의결을 거친 결정이고, 사기업 문제지만 다소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해당 기업들은 “경영책임을 확실히 묻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보수한도를 늘렸지만 실적에 따른 책임을 철저히 따지겠다는 것이다.
KT는 지난 12일 주총에서 등기이사 보수한도를 45억원에서 65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건을 승인했다고 14일 밝혔다. KT 등기이사는 사내 3명, 사외 8명 등 11명이다. 이석채 회장 등의 퇴직금도 대폭 올리는 쪽으로 바꿨다. 지난해 KTF와 합병으로 기업 규모가 커졌고 경영성과도 잘 나왔다는 점이 반영됐다. KT는 2007∼2008년 등기이사 보수한도를 50억원으로 동결했으며, 지난해엔 연봉을 10% 깎는 차원에서 45억원으로 내린 바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 12일 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를 10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06년 7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린 이후 동결돼왔으며 지금까지 매년 올리지 못한 부분에다 지난해 자동차 최다 판매실적 등 경영성과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포스코도 올해 이사 보수한도를 60억원에서 70억원으로 올렸다. 2007∼2009년 동결했다가 4년 만에 올린 것으로, 다른 기업에 비하면 보수가 적었다는 게 포스코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향후 경영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임원 보수를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KT 임원 보수 인상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지난해 말 전체 임직원 중 16%에 달하는 6000여명을 명예퇴직시킨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의 희생을 경영진이 나눠 갖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덕적으로 볼 때 이사 보수한도 상향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KT 관계자는 “단지 보수한도만 올린 것일 뿐 실제 지급은 경영성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영진 연봉 수준이 지난해 기준으로 상위 20∼30개 대기업과 비교할 때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는 19일 주총을 앞둔 삼성전자는 올해 등기이사 보수한도를 520억원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30억원 줄었지만 이사 수가 지난해 9명에서 올해 7명으로 줄어든 만큼 1인당 평균 보수한도는 기존 61억원에서 74억원으로 사실상 20%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3년마다 지급되는 성과급이 반영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그룹 역시 오는 26일 주총에서 임원들에게 2007년 이후 최대 스톡옵션을 제공할 방침이다. 5개 상장사 임원 180여명에 90만여주를 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텔레콤은 지난 12일 주총에서 지난해 보수한도(120억원) 수준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으며, 19일 주총을 개최하는 LG텔레콤 역시 지난해 수준인 40억원으로 동결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기업 임원보수를 올리고 내리는 것은 해당기업이 결정할 문제지만 20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하는 등 고용상황이 최악인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결정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정욱 천지우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