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포동 날다람쥐…그의 무대는 ‘옥상’

입력 2010-03-15 00:23

김길태는 ‘날다람쥐’로 불릴 만큼 민첩하게 재개발 예정지 옥상과 옥탑방을 돌아다니며 범행하는 특성을 보였다. 여중생 이모(13)양의 사체를 유기한 곳도 빈집 옥상 물탱크였고, 다른 여성 성폭행 납치 범행들 역시 모두 자신이 기거하던 옥탑방이나 부근 빈집 옥상에서 자행됐다. 수사 담당자들은 이런 그의 행동 특성이 옥탑방에서 생활하며 건물 위가 익숙해진데다 도피 등에 유리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길태는 지난 1월 23일 오전 4시40분쯤 부산 덕포동 자신의 집 근처에서 20대 여성을 위협, 인근 다방건물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자신의 옥탑방으로 데려와 8시간 감금하며 다시 수차례 성폭행했다. 이 여성은 경찰에서 “범인이 마치 내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김길태는 1997년 7월에도 이 일대에서 9세 여아를 빈집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아이의 부모한테 발각돼 미수에 그쳤고, 2001년 5월엔 길 가던 30대 여성을 똑같은 수법으로 위협해 성폭행한 뒤 자신의 옥탑방에 데려가 10일간이나 감금하고 재차 성폭행했다. 지난 10일 검거될 당시에도 그는 범행현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빈집 옥상에 있다 발견됐다. 그는 당시 민첩한 동작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 벽을 타고 내려가 달아났다.

경찰 관계자는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주택 옥상은 시야와 도주로 확보에 매우 유리한 공간이었을 것”이라며 “교도소에서 복싱 등으로 끊임없이 체력을 단련해 고지대를 이용한 범죄나 도주도 손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감생활 11년을 제외하고 이 일대를 떠난 적이 없는 김길태는 자신의 손바닥처럼 지리를 알고 있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옥탑방에서 자란 김길태는 골목길보다는 일반인들은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 ‘버려진 공간’을 마치 제집처럼 활용하며 범행과 도주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김길태가 살던 부산 덕포동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인구밀집 지역이었으나 신발제조업체인 국제상사가 문을 닫은 뒤부터 슬럼화됐고, 2006년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가 난 뒤에는 1170여 가구 가운데 빈집이 500여개나 되는 곳으로 변해, 김길태 범행의 주무대가 된 셈이다.

부산=윤봉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