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사랑한 남녀 그들은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행복한 극장 공연 연극 ‘리얼러브’
입력 2010-03-14 17:39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30대 중반인 이들은 옆집에 사는 사이다.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이들은 미치도록 외롭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도 있다. 남자의 집에서 넘어오는 담배연기 냄새가 여자에겐 익숙하고, 여자의 코고는 소리가 남자에겐 일상이다. 하지만 서로 다가갈 엄두를 내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이 희생해야하는 사랑을 하려니 도대체 자신이 없다. 이별 후에 받게 되는 상처도 두렵다. 그들은 자신만의 섬에 갇혀 몸부림 칠 뿐이다.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 참 지쳐”라는 이들의 읊조림이 모든 걸 설명한다.
어느 날 이들은 각자 친구로부터 ‘리얼돌’을 선물 받는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과 질감까지 갖춘 이 단백질 인형은 단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점점 ‘리얼돌’을 사랑하게 된다. 처음엔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의 출현이 뛸듯이 기뻤다. 희생을 하지도, 상대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리얼돌’ 유통기간인 3개월이 다 됐고 이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새 걸 사면 그만”이라는 태도지만 이들에겐 ‘리얼돌’이 단순한 상품 이상의 의미가 된지 오래다. 눈물을 흘리며 떠나지 말라고 애원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리얼돌’과의 사랑을 통해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는 오늘도 그냥 지나칠 뿐이다.
연극 ‘리얼러브’(연출 이현규,작가 이윤설·사진)는 외로워하면서도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그린 연극이다. 만화 속 캐릭터와 연애를 하고 게임 캐릭터와 결혼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개연성은 충분하다. 무대에 진짜 ‘리얼돌’이 등장하진 않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남자가 얘기를 할 때 여자가 인형 역할을, 반대상황일 때는 남자가 인형 역할을 한다. 두 배우가 각자 인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몇 군데 없다.
2008년 파파프로덕션 창작희곡공모 우수상 수상 작품이다. 4월 18일까지 서울 혜화동 행복한극장에서 공연된다(02-747-2090).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