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의 여왕’ 탄생시킨 작곡가 박춘석씨 별세

입력 2010-03-15 00:26

트로트의 황제, 2700여 명곡을 남기다

‘섬마을 선생님’ ‘비 내리는 호남선’ ‘삼팔선의 봄’ ‘초우’ 등 한국인의 가슴을 적신 애창가요 2700여곡을 작곡한 박춘석씨가 뇌졸중 투병 16년 만에 14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4세 때 풍금을 자유자재로 쳐 ‘신동’ 소리를 들었다. 소학교, 중학교 시절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홀로 독파한 그는 49년 피아노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 1년간 다니다 중퇴하고 이듬해 신흥대학(현 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 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시작으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아리랑 목동(박단마)’ ‘사랑의 맹세(패티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아가씨(박재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 등을 발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64년 이미자와 콤비시대가 개막되면서 작풍이 트로트로 급선회했다. 이미자와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등 무려 500여곡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작곡가 박춘석의 이름 뒤에는 항상 ‘사단(師團)’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60~70년대 패티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하춘화가 박춘석 사단의 멤버였다. 이들은 이날 고인의 부고를 접하고 “박 선생님은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 있도록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빈소를 찾은 이미자씨는 고인을 추억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은 그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몇 분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선생님은 성격이 깔끔해서 투병 이후 우리 부자를 피하셨다”며 “제 아들에게 선생님은 삼촌이자 큰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는데 비보를 접하고 나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62년 박씨의 곡 ‘초우’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패티김은 “얼마 전 선생님 자택에 찾아갔을 때 병세가 호전된 듯해 안도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고인은 이들과 함께 ‘가슴 아프게’ ‘공항의 이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비 내리는 호남선’ ‘물레방아 도는데’ ‘가시나무새’ ‘마포종점’ 등 숱한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노래는 대중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 지구레코드사 전속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 거성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며 50~8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온 그는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700여곡을 작곡했고,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152곡이 등록되어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씨는 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6년간 투병하면서 거동은 물론, 언어장애로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다. 고인은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서 간병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동생 박금석(77)씨가 맡았다.

그는 KBS 방송가요대상, KBS 가요·가사·음반기획상, MBC 10대가요제 특별상, KBS 가요대상 작곡상,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 옥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박춘석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