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라동철] 안중근 의사 가족

입력 2010-03-14 19:56

안중근(1879∼1910) 의사는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 역에서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독립영웅이다. 일제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터져나온 의거는 한국인의 독립의지와 기개를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었다.

의거 이후 안 의사 집안에서는 의사의 뜻을 받든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배출됐지만 직계 가족들에게는 고난의 길이, 때로는 치욕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 의사는 일제의 탄압을 우려해 의거 직전 어머니와 아내, 두 아들과 딸 등 가족을 러시아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러시아를 거쳐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정착해 살던 1911년, 일곱 살이던 장남 분도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일본이 파견한 밀정이 준 과자를 먹고 독살됐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차남 준생은 ‘민족반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일제가 상하이(上海)를 점령할 때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32세 때인 39년 10월 서울 남산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를 찾아 참배하고 이토의 아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일제의 강압과 꼬임 때문이지만 안 의사의 위명(偉名)에 오점을 남기고 만 것이다. 준생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됐지만 고국으로 곧장 돌아오지 못했다. 안 의사의 아내 김아려 여사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46년 2월 상하이에서 숨을 거뒀고, 준생은 50년 한국전쟁 중에 귀국해 2년 뒤 부산에서 쓸쓸히 세상을 떴다. 준생의 자녀(1남 2녀)들은 그 후 고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안 의사의 장녀 현생도 동생 준생의 뒤를 밟아 41년 3월 박문사를 참배하는 등 삶이 순탄치 못했다.

안 의사 순직 후 가문을 이끌어야 했던 동생 정근과 공근은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정근은 49년 3월 지병으로 상하이에서 사망했고, 공근은 39년 5월 충칭(重慶)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안 의사 가족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더듬는 것은 곤혹스럽다. 독립영웅의 가족들이 제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듬어주지 못한 과거에 대한 자책 때문일 게다. 해방 후에도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어 온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어디 한둘이었나.

오는 26일은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안 의사 가족들의 힘겹고 외로웠을 삶을 기억하고, 그들이 짊어진 역사적 부담을 나눠 지려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안 의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라동철 차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