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으면 보입니다
입력 2010-03-14 20:33
마가복음 10장46∼52절
봄을 나타내는 한자 춘(春)은 새싹을 의미하는 묻힐 둔(屯) 밑에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를 씁니다. 따뜻한 햇볕에 싹이 돋아 올라오는 모양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봄(春)은 봄(見)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열음’하니 여름이고, 익은 열매를 거두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 ‘가시’니 가을이고, 갈무리한 곡식을 먹으면서 머물러 ‘계시’는 겨울입니다. 사물의 모양을 눈을 통해 인식하는 과정을 ‘봄’이라고 하는데 두루 살핀다는 뜻도 있습니다. 봄은 역동적이며 눈을 통하여 인식되는 계절입니다.
바디매오는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기나긴 겨울, 캄캄한 밤의 인생만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인생에 봄이 왔습니다. 눈을 떠서 제일 먼저 예수님을 보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고, 밝은 빛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소망으로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믿음의 조상들이 저로서 증거를 얻었으며,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알았도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를 드렸고,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방주를 예비하였으며, 할머니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보았다”(히브리서 11장)고 했습니다. 알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세계가 있습니다. 보았기 때문에,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이해가 되고 알게 되고 보게 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겨울은 끝났습니다. 인생의 봄이 찾아 왔습니다.
그가 살았던 동네는 여리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인 여리고의 주민들은 열심과 용기와 결단의 역사를 이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BC 15세기경 견고한 성을 건축한 문화의 도시에 살았으면서도 나그네이며 노예에 불과한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을 선택한 기생 라합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발돋움해도 예수님을 볼 수가 없을 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시각장애인이었지만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용기, 가장 귀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와 결단 등 좋은 품성을 가진 여리고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겉옷은 긴 천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척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근동지역은 밤낮의 온도 차이가 아주 심합니다. 낮에 아무리 뜨거워도 밤에는 불을 지펴야 할 만큼 춥기에 겉옷은 밤에 이불의 구실을 합니다. 겉옷이 거추장스럽다고 벗어 놓으면 밤에 얼어 죽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기에 아낌없이 망설이지 않고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에게는 핑계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벗어버리십시오.
봄에 싹이 보이지 않으면 가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봄에 볼 수 없으면, 여름에 ‘열음’ 할 수 없습니다.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겨울에 계실 곳이 없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한 해의 봄을 가꾸듯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예배, 특별기도회 자리에서 여러분의 모습과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박순영 목사 (서울 장충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