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다이어트, 거식증·폭식증 부른다

입력 2010-03-14 17:34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최근 전국 16개 시·도 중고생 7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7%가 식사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생은 14.8%가 식사장애 우려가 큰 고위험군에 해당됐다. 특히 이들 여학생의 47.1%는 자신의 체중이 정상인데도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만에 대한 이 같은 왜곡된 인식과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청소년기 식사장애의 가장 큰 원인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식사장애는 자신의 몸매와 체중에 과도하게 집착해 음식 섭취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병이다. 지나친 체중 감소 때문에 정상 사회생활이 힘들고 치명적인 합병증까지 생길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엔 영양 불균형으로 성장 발달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식사장애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과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먹는 것을 아예 거부하는 ‘신경성 식욕 부진증(일명 거식증)’과 먹은 음식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신경성 대식증(일명 폭식증)’이 대표적이다.

거식증은 병명만으로는 ‘식욕이 없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식욕은 정상이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병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들은 저체중(표준의 85% 이하)임에도 체중 증가나 비만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거나 아주 조금만 먹는다. 때로는 신체 기능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몸무게가 줄어도 스스로는 아직도 살이 쪄서 더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체중을 줄이려는 행동들을 남에게 감추려 하는 게 특징. 식사도 남들과 같이 하지 않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식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식사할 때 음식을 잘게 자르거나 자른 음식을 식기 안에 다시 늘어놓는 데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한다. 을지대병원 정신과 이창화 교수는 “거식증 아이들은 친구나 가족 모임에 잘 어울리지 않으려 하고, 눈물이 많아지거나 짜증을 쉽게 내고 과격해지기도 하는 만큼, 이런 모습들을 보이면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폭식증은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거나 배가 불러도 먹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 폭식은 대체로 다이어트 직후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로 한다. 폭식 후에는 체중 증가가 두려워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억지로 토하거나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경향이 있다. 또 구토제, 설사약, 이뇨제 등을 상습적으로 복용한다. 폭식증 환자들은 거식증처럼 심각할 정도로 체중이 줄지는 않지만 구토 및 지나친 이뇨제 사용 때문에 여러 가지 신체적 문제가 초래된다. 주 2회 이상 폭식과 구토를 하는 악순환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폭식증 환자로 진단된다.

◇합병증으로 몸과 마음 함께 병들어=식사장애 환자들은 겉보기에는 완벽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기력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대인관계 공포증, 사회 공포증에 빠지거나 심하면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사장애는 마음뿐 아니라 몸도 병들게 한다. 저체중이 지속되면 백혈구 수치 감소, 골다공증, 장 기능 약화 등을 일으키며 여성인 경우 생리가 멈춘다. 극단적인 경우 심장 근육이 약해지고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폭식증은 반복되는 구토로 위와 식도가 손상되고 잇몸이 상한다.

이 교수는 “식사장애 환자들은 스스로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을 거부하기 십상이지만 일찍 발견해 인지행동요법, 약물치료 등을 병행하면 회복될 수 있다”면서 “특히 가족의 도움이 치료 승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가족은 환자 스스로 심리적 상태와 행동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폭식과 구토가 몸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려 주면서 치료에 흥미를 갖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