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길상사 떠나던 날… “마지막 모습이라도” 조문객들 손 맞잡고 눈물
입력 2010-03-12 21:36
12일 오전 11시쯤 서울 성북동 길상사. 적갈색 가사에 덮인 법정(法頂·속명 박재철) 스님의 몸이 극락전 앞마당 대나무 평상에 놓였다. 두 손을 단전 위로 모으고 누운 모습이 주름진 가사 위로 드러났다. 머리, 손, 발끝 부분이 도드라졌다. 평상은 스님 곁에 꽃 한 송이 놓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폐암으로 투병하다 전날 입적한 스님은 생전 “강원도 오두막에서 쓰던 대나무 평상 위에 올려서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다비준비위원회는 강원도에서 쓰던 평상과 똑같은 평상을 만들었다. 최근 눈이 많이 내려 강원도까지 갈 수 없는 탓이었다.
길상사는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조문객으로 붐볐다. 분향소가 차려진 설법전에서 시작해 사찰 밖으로 20m가량 더 이어진 조문행렬은 길고 구불구불했다. 낙엽이 바람에 쓸려 비탈길 아래로 구르는 소리, 느린 발자국 소리, 간간이 들리는 목탁 소리가 전부일 정도로 길상사는 엄숙했다.
사찰 한가운데 솟은 종각에서 굵은 범종 소리가 깊고 길게 울렸다. 조문객들은 법정 스님이 누운 극락전 앞마당 쪽으로 합장하고 서서 조문했다. 스님의 법구(시신)가 검정 운구차에 옮겨지자 곳곳에서 여성들이 스님을 부르며 흐느꼈다. 문 닫힌 운구차를 붙잡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문객은 길상사를 빠져나가는 운구차를 뒤따랐다. 10여m 너비의 내리막길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잿빛 도포를 입고 조문객을 안내하던 여성들은 운구차를 쫓지 못한 채 손을 맞잡고 눈물만 흘렸다.
운구차에 실린 법정 스님의 법구는 전남 순천 송광사로 떠났다. 지팡이를 짚고서 운구행렬 속에 파고들었던 함옥순(94·여)씨는 “마음이 슬프고 요상하다”고 했다. 길상사 인근에 산다는 김태석(72)씨는 “법정 스님은 경계가 없으신 분으로 종교를 떠나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평가했다.
충남 당진에서 올라온 전승진(58)씨는 “불자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이 쓴 책 ‘무소유’를 읽으면서 삶이 변하는 걸 느꼈다”면서 “종파를 초월해 법정 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김형오 국회의장,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들과 장경동 목사 등 종교인들도 길상사를 찾아 법정 스님을 추도했다.
길상사를 떠난 법정 스님의 법구는 송광사로 옮겨져 13일 오전 화장된다. 다비준비위원회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사리가 나와도 수습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뼛가루를 어디에 뿌릴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