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디제이’ 첫사랑이 숨쉬는 라디오 천국… 히로스에 료코 주연, 잔잔하게 그리는 어린 시절 풋사랑
입력 2010-03-12 18:54
“새하얀 여름 달밤/ 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조병화의 ‘첫사랑’ 중)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안타깝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다. 어쩌면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처음 앓아본 사랑의 열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시절 순수했던 나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11일 개봉한 일본 영화 ‘리틀 디제이’는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타마키(히로스에 료코)는 새벽 3시에 방송되는 인기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 PD로, 프로그램이 개편되며 한 달간 휴가를 갖게 된다. 지친 타마키는 우연히 자신에게 라디오 PD라는 꿈을 갖게 해준 소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는 1977년 타마키의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타마키는 사고로 입원을 하게 되고, 그 곳에서 병원 내 점심 방송 DJ를 맡고 있는 또래 소년 타로(가미키 류노스케)를 알게 된다. 타로의 방송은 환자와 환자의 가족에게 소중한 소통 창구다. 애인한테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 진폐증 광부, 고맙다는 말을 못해 서먹해진 부자 등이 사연을 보내고, 라디오를 통해 마음을 연다. 한 병실을 쓰는 어린 타마키(후쿠다 마유코)와 타로는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된다. 둘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극장에서 떨리는 첫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별을 보러 전망대에 올라갔다 소나기에 발이 묶여 한데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백혈병에 걸린 소년과 밝고 귀여운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은 결국 슬픈 결말을 맞게 된다. 영화 후반부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거의 흡사하다.
내용은 진부할지 모르나,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는 영화의 배경과 음악, 그리고 라디오라는 소재는 그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통해 각자의 사연과, 음악과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안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린다. 어린 타로와 타마키 역을 맡은 두 배우의 귀여운 연기 역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가타 코토 감독은 여성 특유의 서정적 감각과 세심함으로 소품 하나까지 공을 들였다. 차와 버스, 오래된 극장의 딱딱한 의자와 병원 내부, 그리고 둘이 처음 영화를 관람하는 극장의 스크린까지 70년대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신경 쓴 티가 역력하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퀸’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세인트 미셸’ 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노래로 사용된다. 그 외에도 일본 최초의 여성 아이돌그룹 ‘캔디즈’가 부른 ‘연하의 남자아이’, 일본 역대 100대 아티스트로 뽑히기도 한 ‘튜립’의 ‘블루 스카이’까지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