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휘청거리는 날
입력 2010-03-12 18:49
인생에는 반드시 휘청거리는 순간이 온다. 지난해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었던 김준곤 목사가 투병 중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소천 받으시기 일주일 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김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인생의 휘청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모두에게는 휘청거리는 순간이 온다!
“민족의 가슴 속에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디푸른 그리스도의 나라를 오게 하자”는 가슴 벅찬 복음의 격문을 주창했던 김준곤 목사. ‘복음의 막노동꾼’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김 목사도 휘청거렸다. 그리고 87세로 이 땅을 떠났다.
김 목사님의 병문안 직후 형제처럼 지냈던 한 목사님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석증’이라는 일종의 귀 질환으로 갑자기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평생 처음 본 그분의 휘청거리는 모습이었다.
법정 스님이 11일 입적했다. 78년의 삶 동안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맑고 아름다움’을 보여준 스님도 인생의 말년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를 가르치고 떠난 법정 스님은 김준곤 목사, 김수환 추기경 등과 같이 이 시대의 큰 어른이었음에 분명하다.
모두에게 휘청거리는 순간이 온다.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 날이 분명히 찾아온다.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일어난 사람일지라도 결국 마지막 휘청거림, 마지막 쓰러짐을 당할 날이 온다. ‘떠나는 날’이 온다.
휘청거리는 날, 떠나는 날에 우리는 어떤 고별사를 할 수 있을까. 삶으로, 말로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성경 사도행전 20장에는 사도 바울이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이런 고별사를 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이 고별사대로 살다 갔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남겼다. 김준곤 목사는 ‘백문일답’(백가지 질문을 해도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을 남겼다. 인생의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휘청거리는 날에 우리는 진정 무엇을 남기고 장렬하게 쓰러질 것인가.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