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고민 들여다봤지요”

입력 2010-03-12 18:07


담배 한개비의 시간/문진영/창비

“난 내가 그냥 이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이제껏 모두를, 그냥 여행하듯 만나왔어. 언제든 헤어질 사람, 그런 전제로.”(물고기)

“왜 굳이 그래야 하는데?”(나)

“그래야 가벼우니까.”(물고기)

(147쪽, 주인공 나와 친구 ‘물고기’의 대화 중)



1987년생, 서울시립대 경영학부에 재학중인 갓 스물 세 살의 작가 문진영(사진)의 첫 장편 ‘담배 한 개비의 시간’(창비)은 현재 작가가 속한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심도 있게 들여다본 소설이다.

작가의 모습이기도 할 등장인물들은 취업을 목표로 스펙 관리에 몰두하는 20대와는 또 다른 감성을 드러낸다. 이들은 자아와 사랑, 관계와 청춘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한다. 어쩌면 젊은 그들이기에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 못한 채, 최저 임금을 받으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 휴학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나는 21세의 여대생이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이태원의 한 옥탑방에서 자취를 하고, 강남대로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말끔한 정장을 빼입고 바삐 걷는 사람들 가운데 느릿느릿 걷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강남대로에서도, 학교에서도 무언가를 향해 바쁘게 걷는 사람들 속에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주변 인물 역시 비슷하다. 학교 선배인 M과 편의점의 전 타임 알바생 J, J의 짝사랑이자 근처 까페에서 알바를 하는 ‘물고기’가 그들이다.

“나는 일련의 관계들을 겪으면서 그것들이 참으로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안녕, 모든 대화의 방식과 혹은 입 밖에 내지 않고 공유하는 감정, 눈빛의 종류, 친절의 깊이,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성냥개비를 쌓아올린 듯 위태롭다고.”(143쪽)

나는 M을 좋아하지만, M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둘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렵게 여기지만, 속을 터놓는 대화는 하지 않는다.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묵직한 인연을 만드는 것이 두려운 이들은 언제든 헤어질 것을 전제로 만나고, 후 불면 부서질 것 같이 위태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각박한 현실 속에 20대에게 내재돼버린 관계공포증이 아니다. 소설은 이 또한 성장의 과정임을, 그리고 또 그렇게 관계를 맺어 나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운다.

평론가 강지희는 “소설 프롤로그의 ‘나는 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9쪽)와 마지막 문장인 ‘나는,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175쪽)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앞문장이 수동적이며 과거형인 것과 달리, 뒷 문장은 쉼표로 주체를 강조하고 미래를 내포한 의지를 표출한다”고 설명했다. 슬픔과 고통이 크더라도, 그 역시 성숙의 과정임을 작가는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건조하고 단조로운 문체로 써내려가지만,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 손짓과 느낌에 대한 묘사는 무척 세밀하다. 등장인물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는 담배 한 모금에 그들이 실어 보내는 무력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경쾌하게 묘파하며, 청년세대가 고유하게 포착할 수 있는 일상세태의 현실과 문화적 감수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호평을 받았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