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그는 시대의 영웅이었다
입력 2010-03-12 18:07
대산문학상 수상자 김인숙 첫 역사소설 ‘소현’
왕세자가 창경궁 환경당에서 죽었다. (중략) 세자가 10년 동안 타국에 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두루 맛보고 본국에 돌아온 지 겨우 수 개월 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 세자의 향년은 34세인데, 3남3녀를 두었다(‘인조실록’ 중)
격동의 시기에 인조의 장자로 태어나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소현 세자(1612∼1645)가 소설가 김인숙(47)의 펜 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의 첫 역사소설 ‘소현’(자음과모음)을 통해서다.
일반적으로 소현세자의 일생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부분은 아버지 인조에 의한 독살설이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소현의 사인에 있지 않았다. 작가에게 중요한 건 결국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일이었다.
작가는 “창조한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다 보니 무엇 하나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다”며 “수백 년 전 살았던 소현의 감정을 상상하고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316쪽)
작가는 “아마도 한 5년? 첫 단락을 써놓고 망설이고 다시 그 뒤를 이어붙인 후 한동안을 더듬거렸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미친 듯 했다”고 털어놓았다. 소현을 짝사랑하는 기분이었다고도 했다.
“저는 소현세자가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패전국의 세자였고, 왕위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반드시 승리하고 뭔가 이룬 사람만이 영웅은 아니잖아요.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소현은 영웅이죠.”
소현은 살얼음판 같은 적국에서 적국 뿐 아니라 아버지의 눈치까지 살피느라 동생에게조차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독한 군주이기도 했다.
“세자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항상 남보다 느리게 말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27쪽)
작가는 소설에서 소현 뿐 아니라 양반, 중인, 천민 등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복 전쟁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의 상처 입은 삶을 끌어안는다. 소현과 함께 볼모로 끌려간 봉림대군, 좌의정 심기원의 아들 심석경, 청 황제에게 바쳐졌다 대학사의 둘째부인이 된 회은군의 딸 흔과 무녀 막금, 청나라 군인들에게 어머니와 누이가 능욕과 도륙을 당한 역관 만상 등. 이들이 겪어내야 했던 고통과 두려움, 좌절과 욕망은 작가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생생한 질감을 획득한다. 아들이 적이 될까 두려워했던 인조나 홀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적국의 왕이 가진 인간적 아픔도 작가는 고루 어루만진다.
실제 만상과 막금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고밀도의 팩트와 픽션을 조화롭게 엮어 단단한 문체로 펼쳐내며, 작가는 역사를 넘어선 서사를 구축해 낸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인조실록’, ‘심양장계’, ‘심양일기’ 등을 모두 구해 읽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관련 자료를 찾아 읽었다.
“역사 소설은 자료를 많이 찾고 고증을 충실히 거쳐야 하지요. 하지만 자료에 몰입을 하면 오히려 기록에 치일 수도 있죠. 그래서 자료와 거리두기를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너무 많은 사람이 등장하다 보니 이야기 집중도를 위해 호흡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가 소현세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볼모로 끌려갈 당시 소현과 그를 볼모로 끌고 간 청의 왕자 도르곤이 동갑이라는 지점이었다. 동시대 동갑의 나이로 태어나 승자와 패자가 됐던 둘의 내면이 궁금했다. 작품을 마친 지금 작가의 답은 “결국 두 사람 모두 깊은 고독과 상처를 가진 채 삶을 버텨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쓰고 싶었던 건 승패라는 굴레와 고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버텨야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