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절룩발이 루니의 가르침

입력 2010-03-11 19:08


우리집 개 루니를 산책시킬 때면 좀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개를 좋아하는 꼬마들이라도 만나면 “이 개, 한 쪽 다리가 아파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요?” 하는 질문에 시달려야 한다. 간혹 어떤 꼬마가 “평생 이렇게 걸어야 해요?”하고 묻기라도 하면 나는 행여 루니가 말귀를 알아듣지나 않을까 눈치를 슬쩍 보게 된다.

한때 마장마술을 하는 말처럼 긴 다리로 우아하게 걸었던 루니에게, 사냥개의 혈통이 남아 자세를 낮추고 바람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며 쌩쌩 달렸던 그에게, 넌 이제 영영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희망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해줄 용기가 내겐 없다. ‘그때 다리만 다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내게서 떨쳐버리시지 못한 미련이 있다. “그때 돌아오게 하지 말고 계속 공부를 시킬걸 그랬어.” 어머니 보시기에 내가 지난 십년 동안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돈도 별로 되지 않는 소위 잡다한 일들을 잔뜩 맡아 와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엄마, 이 정도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꽤 괜찮은 삶이에요. 내 힘으로 해 낸 것도 많고, 세상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언성을 높이면서도 나 역시 내 삶이 어느 지점부터인가 잘못 가고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루니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배우는 게 적지 않다. 그는 절룩거리면서, 다리들끼리 속도차가 어긋나서 가끔 쿵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여전히 내가 던지는 인형을 잡으려고 신나게 달려간다. 물론 네 개의 다리로 달리면 지금보다 훨씬 기분이 후련하다는 것은 루니도 안다.

하지만 과거에 연연해하는 대신 그는 아프지 않은 세 발로 해낼 수 있는 자기만의 기술을 찾아냈다. 뒷발에 체중이 실리지 않게 기지개를 켜는 특이한 자세도 개발했고, 받침대를 디디고 소파로 뛰어오르는 법도 익혔다.

루니는 한쪽 다리를 잘 못쓰게 된 것에 대해 크게 비애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삶이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잘나가던 사람이 좌절로 인해 최악의 선택을 하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덕분에 인간이 이토록 대단한 문명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인간이 도대체 왜 좌절에는 맨살로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 문제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에게서만 해답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날씨가 풀리면 공원이나 길에 나가 한번쯤은 유심히 개를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늘 생각해오던 모습대로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 주어진 삶은 절대로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개들이 한 수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이주은 성신여대 교수 (미술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