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오종석] 정부 비평과 감독의 조건
입력 2010-03-11 19:58
중국 당국이 요즘 인민 대중을 향해 정부를 비평하고 감독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업무보고에서 발언하면서 주요 정부 관계자나 매체도 거들고 나섰다. 원 총리는 “인민이 정부를 비판하고 감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론의 감독 기능을 활성화해 권력이 햇빛 아래에서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 국정자문회의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함께 정기국회 격인 전인대까지 양회(兩會)가 계속되면서 비슷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서기는 “인민이 정부를 감독하는 방식은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전인대와 정협”이라며 “전인대 대표와 정협 위원들이 (인민들을 대신해) 정부 업무에 비평과 건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 서기는 또 “나는 여론 감독, 인터넷 비평, 편지 등 인민들의 비평과 감독을 환영한다”고 밝히면서 매일 아침 인터넷 비평 의견을 전달받아 즉시 처리한다고 소개했다.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은 상하이 시정부 업무태도의 결점과 실수에 대한 비평을 듣고 기뻐한다는 뜻의 ‘문과즉희(聞過則喜)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류징민(劉敬民) 베이징 부시장도 “매체는 여론 감독기능을 발휘해 백성들의 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면서 “비평과 감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롼청파(阮成發) 우한(武漢) 시장은 “인민을 위해 업무를 하고 감독을 받아야 한다”면서 “비평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관원의 기본자세를 제시했다.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망은 원 총리의 발언이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정법대 법학원 허빙(何兵) 부원장은 “자신 있는 정부는 응당 인민들이 비평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행정학원 왕위카이(汪玉凱) 교수는 “사회비평 역량은 정부를 도와 헛수고를 덜할 수 있도록 하고, 대가를 적게 치를 수 있도록 한다”고 긍정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이 주로 해왔던 정부 비평과 감독을 일반 인민들이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를 비판하고 감독하는 게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회나 시위를 통한 비판은 강압적으로 바로 제압당했다. 언론과 통신은 사실상 통제됐고 인터넷은 철저한 검열 대상이었다.
실제로 국제사회로부터 석방 압력을 받고 있는 류샤오보(劉曉波) 변호사 등 정부를 비판하다 구속 수감되고, 가택 연금된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는 상당수에 이른다.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보복당하는 언론인도 적지 않았다. 최근 양회를 앞두고 ‘현대판 신분제’로 불리는 호적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며 13개 신문사들의 ‘공동사론(共同社論)’ 발표를 주도했던 관계자는 징계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언론인 자격시험까지 도입키로 한 것도 언론 통제수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터넷 검열과 해킹 문제로 불거진 구글사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니콜 왕 구글 부법률고문은 10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 당국의 검열 요구가 계속된다면 중국을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중국 인민들도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원 총리 발언 이후 수많은 누리꾼들이 의문을 제기하며 인터넷에 올린 글은 이를 반영한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나”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누가 감히 비평할 수 있나” “농담하지 말라, 경찰이 끝까지 찾아내 체포한다는 것을 백성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등등.
결국 원 총리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비평과 감독을 위한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외 공표용 허언(虛言)으로밖에 볼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진정 비평과 감독을 받을 자세가 돼 있다면 인민들에게 정부를 향해 말할 권리, 행동할 권리, 쓸 권리를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