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음모 史觀
입력 2010-03-11 18:58
중요한 사건 배후에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음모(陰謀)가 있다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몇 년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음모이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음모사관은 강한 권력을 지닌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목적을 갖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역사인식이다. 음모사관은 어쩌면 역사 기록이 시작됐을 때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근자의 음모이론은 2001년 9·11 테러 자작극설이다. 쌍둥이 빌딩의 철골이 녹아 무너져 내리려면 비행기 충돌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의 동영상이 나돌았다. 납치된 비행기가 펜타곤 건물에 충돌한 것도 날조라고 주장했다. 빈 라덴의 범행 시인과 과학적 증거의 부재, 현장 목격자 등 움직일 수 없는 진실들이 있음에도 한때나마 인터넷을 풍미했다.
일본 국회의원이 뒤늦게 이 음모이론을 들고 나왔다. 후지타 유키히사 민주당 참의원 의원이 워싱턴 포스트에 “9·11 테러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 아니라 주식 거래상 이득을 노린 음모일 수 있다”고 말하고 근거로 테러범 중 일부가 살아있고 사건을 미리 안 몇 명이 주식으로 이익을 얻었다는 설을 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원래 내보내려던 인터뷰 기사 대신 8일자 사설로 “독극물처럼 위험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이런 음모론적 시각이 민주당에 팽배해 있는 것 아닌지 우려했다.
후지타는 이런 주장을 전부터 해 왔다. 올해 60세의 3선 의원 후지타는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국제국장을 맡고 있어 그의 생각이 미·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후지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전직 외교관 마고사키 우케루로부터 영향 받았다고 설명했다. 외무성 국제정보국장과 이라크 대사, 방위대학교 교수를 지낸 마고사키는 9·11 테러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비교했다. 부시 정권이 9·11 전 정보 당국의 수차례 테러 경고를 무시한 것은 강력한 군사 조직을 유지하길 바라는 그룹이 테러를 유도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지적이다.
치밀한 계략과 준비로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킨 일본이지만 패전 후에는 미국이 진주만 공격 계획을 알고도 전쟁 명분을 만들기 위해 모른 척했다는 음모이론이 널리 퍼졌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며 도요타 리콜 사태로 잔뜩 꼬인 미·일 관계를 엉뚱한 패전 콤플렉스가 더 악화시켰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