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나랏빚에 연금·수당 대폭 삭감… 동유럽 국민 “아, 옛날이여”
입력 2010-03-11 18:34
헝가리 지방 도시 펙스에 사는 마힐리 바예르(76)는 20년 전인 56세 때 허리를 다쳐 은퇴해 줄곧 연금으로 생활한다. 수도 부다페스트에 상경해 볼일을 마치고 고향 행 열차를 기다리는 그의 행색은 초라하다. 하지만 그가 지불한 기차표 값 등 교통비를 국가에서 지원받고, 월 390달러(약 44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건강보험은 공짜이며 연료비 보조금까지 받는다. 이런 사실을 알면 선진국 노인들도 부러워할 만하다. 모두 사회주의의 유산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헝가리 국민들은 당연시 여겼던 사회주의적 문화와의 결별을 강요당하고 있다. 바예르의 후배 세대에게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주는 사회안전망은 옛날일이 돼 가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 보도했다.
헝가리는 2008년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지난해 4월 들어선 버이너이 고르돈 총리는 내핍정책의 일환으로 연금을 줄이는 한편 정년을 2012년부터 62세에서 65세로 상향해 시행키로 했다. 아동보육수당이 삭감됐고, 주택 마련 대출이자의 경감 혜택도 대폭 줄었다. 각종 사회 수당의 수령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사정은 같은 동구권 국가였던 루마니아도 마찬가지다. 공산정권 붕괴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해외자본 유입으로 순탄하게 굴러가던 이 나라 경제에 경고음이 들린 건 지난해부터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투자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결국 이 나라도 IMF에 문을 두드려야 했다.
루마니아는 재정 건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트라이안 바세스쿠 대통령은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인 새 예산안으로 IMF와 유럽연합(EU)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스탠더드&푸어스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지난달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루마니아 국민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7.2%에서 5.9%로 낮추기로 하면서 공무원을 10만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공무원 임금은 동결됐고, 연금 지급액은 줄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