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수 韓銀맨 이성태 총재 마지막 금통위… 소신 관철못하고 금리동결 “땅 땅 땅”

입력 2010-03-12 00:24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사석에서 “한 사회의 금리는 경제주체들이 돈을 쉽게 빌리기가 ‘약간’ 부담스러운 정도가 바람직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개인이나 기업이 돈을 빌리기에 앞서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수준의 금리가 돼야 자원이 비생산적이거나 비효율적인 데서 낭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의 건강한 유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금리는 낮은 것보다는 약간 높아야 한다는 게 42년 3개월 최장수 한은맨의 지론인 셈이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 총재에게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하는 마지막 자리였다.

이날 금통위는 민간경제 부문의 활력 회복 확인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연 2.0%인 기준금리를 13개월째 동결했다. 이는 역대 최장 기간 기준금리 동결이다.

금통위를 사흘 앞둔 지난 8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점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발언하는 등 정부가 금리 동결을 강력히 압박하면서 이날 결정은 시장에서 이미 예상됐던 바였다.

금통위 직후 이 총재 발언에는 현재의 초저금리 상황에 대한 충고와 함께 지론을 관철하지 못한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제기한 배경과 관련, “우리 경제의 자금 내지 자원의 상당 부분이 주택 구입이나 교체에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소득 수준이나 현재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비춰 바람직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 관련 대출의 증가 폭이 지난해와 비교하면 많이 준 것 같지만 과거 10년 동안 평균과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 부채가 급증하는 데는 정상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금리가 주원인이라는 점을 시사했다는 분석이다.

경제의 안정적 성장은 물론 가계 부채 해결을 위해서도 금리 정상화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금리 수준이 약간은 부담스러워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진다는 지론을 드러낸 셈이다. 이 총재는 “흔히 재무 부담이 늘어나므로 가계 부채가 많으면 금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경제학 교과서는 정반대로 얘기한다”고 했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부채가 많으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돼 있으며, 이를 통해 부채가 더 늘어나는 것을 막고 현재 부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는 사람은 부채를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합의제 조직인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견 조율에 실패해 지론을 펴지 못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 시 (미래의 위험 등을 예상하고) 미리미리 움직여야 하는데 설득과 합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9∼10월 부동산시장 불안과 이후 경기회복세 본격화 등을 논리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도했으나 금통위에서 과반수 찬성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경기선행지수가 1년여 만에 하락하면서 경기추세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아직은 경기회복세가 달라졌다고 판단할 이유가 없고, 과거에도 경기회복세가 강한 속에서 선행지수가 일시 하락한 예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