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심리 전문가들이 본 김길태… “범행 부인은 방어 위한 의도적 망각”
입력 2010-03-11 22:06
부산 여중생 이모(13)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는 경찰에 붙잡힌 후에도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력범들이 일단 체포된 상태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면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에 투입된 한 프로파일러(Profiler)는 11일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보이는 그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것은 자기방어기제이거나 의도적 망각을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김길태는 과거에도 범행을 부인한 전력을 갖고 있다. 1997년 7월 부산 덕포동에서 길 가던 9세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을 때, 2001년 4월 덕포동에서 귀가하던 3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도 그는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확실한 증거물을 확보해 법원으로부터 각각 3년과 8년의 징역형 선고를 이끌어냈다.
일부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김길태가 DNA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범행을 부인하는 것은 DNA가 얼마나 결정적인 증거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휴대전화가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는데도 아날로그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김길태의 행태로 볼 때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길태의 경우 미완성의 사이코패스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 근거로 김길태의 범행이 다른 사이코패스들과 달리 치밀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경찰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자신이 사건과 무관함을 강변한 것도 수사에 혼선을 노린 것일 수 있지만 경찰 수사에 불안을 느낀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청 과학수사팀 소속 프로파일러로 이번 사건에 투입된 권일용 조사관은 김길태가 사건 현장 부근에 머물다 잡힌 데 대해 “고정형 성범죄자는 멀리가지 못하고 집 근처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사한 예로 40일 넘게 수사망이 좁혀오는데도 집 주변을 배회하다 붙잡힌 2007년 제주도 양모(9)양 살해사건의 범인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강호순 사건 때 자백을 받아낸 프로파일러다.
권 조사관은 또 “김길태가 여성들을 납치해 장시간 감금한 것은 그만큼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홀로 은둔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잔혹한 범행을 서슴지 않은 김길태를 ‘프레데터(predator·포식자)형 범죄자’로 분류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혼자 지내다가 어떤 욕구가 생기면 주변에서 대상자를 물색하는 김길태의 모습은 포식동물을 연상시킨다”며 “성폭력 가해자들은 잘못된 성지식을 가진데다 정서적으로 반응을 잘 못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져 성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상대방 동의 아래 그랬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key Word : 프로파일링
범죄 현장을 분석해 범인의 나이와 성격, 직업, 범행 수법 등을 추론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기법이다. 현장의 각종 증거를 통해 범인의 심리 상태와 행동 기질 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특정 유형의 범죄자로 추려내 수사망을 좁혀 나간다.
부산=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