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폴라로이드 흥망사

입력 2010-03-11 18:37


한때 우리에게도 애장품으로 통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1960년대 미국 가정의 ‘완소’ 아이템이었다. 첫돌이나 크리스마스, 졸업식, 결혼식 등 그들의 모든 대소사는 폴라로이드와 함께했다. 찍은 뒤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이 마법의 즉석사진기는 하버드대를 중퇴한 에드윈 랜드의 발명품이다. 크리스마스 날, 왜 찍자마자 사진을 볼 수 없는지 궁금해 하는 세 살배기 딸의 질문에 영감을 얻어 개발에 착수, 첫 제품을 출시한 1948년에만 500만 달러 매출을 올렸다.

즉석사진기는 전문가에게도 활용도가 높았다. 상업 사진가들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폴라로이드를 통해 조명이나 구도 등에 대한 감을 잡기도 했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현지인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풍경 사진의 대가 안셀 아담스는 폴라로이드사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품질 혁신을 통해 장난감 사진기라는 전문가들의 편견을 없애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팝아트의 상징인 앤디 워홀도 폴라로이드의 ‘광팬’이었고, 포토리얼리즘 창시자로 통하는 판화가이자 미술가 척 클로스 또한 초상사진에 폴라로이드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인 랜드와 작가들의 우정도 깊어갔다. 폴라로이드를 통한 작품 활동에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랜드에게 때로는 작가들이 보답으로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고, 때로는 랜드가 손수 컬렉션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진 작품만 1만여점. 로버트 프랭크, 데이비드 리빙탈, 로버트 메플소프 등 모두 쟁쟁한 작가의 작품들이다.



애석하게도 이 소장품 일부가 6월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진다. 화려한 날들은 다 가고, 디지털 카메라 인기에 밀려 파산신청을 한 폴라로이드의 모회사에 법원이 작품을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작가들은 작품 기증 당시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며 거세게 항의했으나 법원도 폴라로이드사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애초 폴라로이드사는 소장품 전체를 미술관에 넘겨 소장 당시의 취지를 살려보려 했으나 가격 협상 과정에서 결렬됐다. 경매에 나오는 작품은 대략 1200여점, 소더비 측은 이들 작품으로 최소 750만 달러 수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폴라로이드사는 이미 2년 전 필름 생산을 중단해 사실상 성공신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필름을 사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 모니터로는 방금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과거에 찍은 사진까지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고, 포토숍에서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사진을 변환해 내는 것은 간단하다. 답답한 건 폴라로이드를 애용하던 전문가들이다. 디지털 기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폴라로이드 필름만의 질감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남대문과 충무로에서는 유통기한 지난 폴라로이드 필름이 10배 가격에 거래됐지만 이제 그마저도 동이 났다.

폴라로이드는 소멸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기술로 진화된 것일까. 기술의 진보는 대담하고, 예술의 결은 미세하다. 그래서 예술과 기술이 만났을 때, 더러는 예술이 더욱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포토에디터>